대통령도…정치인도…전쟁영웅도 못피했다

   `전쟁 영웅`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워싱턴 집무실과 출장 중 군용기 등에서 수차례 육사 후배인 유부녀와 밀회를 나눴다. 존 앨런 아프가니스탄 미군 사령관은 2010년부터 최근까지 군 사교계 마당발 유부녀와 3만쪽에 달하는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최고위급 군장성들이 벌인 스캔들에 미국인들은 충격받았다. 지금 워싱턴 정가를 뒤흔들고 있는 이른바 `CIA 스캔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치적 중 하나로 칭찬받는 이라크 철군을 완료했고(퍼트레이어스), 올해 말 6만4000여 명 미군을 아프간에서 안전하게 철수시킬(앨런) 최고위 관료 및 군장성이 유부녀들과 부적절한 스캔들에 휘말린 것이다.
현대사에는 이처럼 다양한 스캔들과 게이트가 있었다. 스캔들은 단순히 가십에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스캔들 당사자인 유명인의 불명예를 초래했고 역사의 흐름을 바꿔버릴 정도의 초대형 게이트로 발전하기도 했다.

   모셰 카차브 전 이스라엘 대통령은 대통령 재직 중이던 2006년 무려 10명의 여성을 성폭행 또는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그는 사임 요구를 거부하고 탄핵까지 피해갔지만, 결국 2007년 1월 임기 만료를 2주 남긴 채 불명예 퇴진했다. 2009년 3월 강간죄로 기소돼 2010년 12월 유죄 판결을 받았고, 2011년 3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는 2008년 사법당국에 의해 고급 매춘 조직의 주요 고객이었음이 들통났다. 그는 최소 7차례 매춘 업소를 찾았으며, 호텔을 예약하면서 선거 자금까지 유용한 혐의를 받았다. 뉴욕주 검찰총장 출신으로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그는 이 때문에 물러났다.
도미니크 스트로스칸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해 5월 한 미국 호텔 여종업원과의 성 추문과 연이은 매춘 혐의로 개인적 몰락을 겪었다. 그는 스캔들만 아니었어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대신 엘리제궁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사회당 유력 대선 후보였던 그는 지금 매춘 조직을 통해 성매매를 알선하고, 기업가들의 회사 공금으로 비용을 지불한 혐의로 재판을 받는 처지다.
지난해 섹스 스캔들로 사임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 역시 10대 여성 카리마 엘 마루그와 13차례 돈을 주고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다. 케네디가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존 에드워드 전 상원의원은 암투병하는 아내 몰래 벌인 혼외정사가 들통났던 이른바 `채퍼퀴딕 스캔들`로 물러났으며, 2008년 버락 오바마에게 민주당 대선 후보 자리를 넘겨줬다.

   중국 정치의 `떠오르는 별`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의 낙마를 가져온 스캔들은 올해 일어났다. 심복의 배신, 아내의 영국인 사업가 독살, 아들의 방탕한 유학생활 등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최대 정치 스캔들이 될 만한 요소들을 갖췄다. 다롄 시장→랴오닝 성장→상무부 부장→충칭시 당서기 등을 거친 보시라이는 올해 초만 하더라도 차세대 최고 지도부 진입이 확실시되던 그였다.
그러나 자신의 심복 왕리쥔 전 충칭시 공안국장이 여장을 하고 미국 총영사관에 들어가 망명 신청을 하는가 하면, 아들 보과과의 영국 유학과 집안 사업관리를 도왔다는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가 의문의 독살을 당하고, 또 보시라이의 부인 구카이라이가 헤이우드를 좋아해 헤이우드의 중국인 부인을 위협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보시라이에 대한 사법 절차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종신형이나 사형 유예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구카이라이의 살인 사건은 허베이 중급법원에서 지난 8월 사형유예 판결이 내려졌다.
CIA 스캔들의 핵심 인물인 미국 군 사교계 마당발 질 켈리(37).

   1963년 영국 보수당 해럴드 맥밀런 내각의 국방장관이었던 존 프러퓨모는 갓 스무살 넘은 콜걸 크리스틴 킬러와의 혼외정사로 공직에서 물러났다. 유명 정치인과 고급 콜걸의 염문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의회가 조사에 나설 만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러나 옛 주영국 소련대사관 소속 해군무관 유진 이바노프가 킬러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섹스 스캔들은 단숨에 국가안보사건으로 격상됐다. 조사 당국은 이 사건에 대해 "군사 정보가 소련으로 넘어갔다는 증거는 없다"고 결론지었지만 문제는 프러퓨모의 거짓말이었다. 처음에 의회에서 "킬러와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다"고 잡아뗐던 그는 석달 만에 "국민을 속여서 죄송하다"고 실토했다. 끝까지 그를 감쌌던 보수당 정권은 이듬해 총선에서 대패했다.
워터게이트는 섹스 스캔들에서 비화된 것은 아니지만, 대형 권력형 비리에 `게이트(gate)`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계기가 됐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선을 위해 백악관 직원들이 워싱턴DC의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전국위원회(DNC) 본부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려다 체포되면서 닉슨 대통령의 사임(74년 8월 9일)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이 바로 워터게이트다. 기사를 쓴 워싱턴포스트의 젊은 사건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은 취재원 보호를 위해 `딥스로트(목구멍 안쪽)`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닉슨 대통령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하게 부인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음모는 하나둘 베일을 벗었다. 특별 검사가 임명됐고 의회에는 닉슨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제출됐다.

   `지퍼게이트` 혹은 `모니카게이트`로 불리는 사건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은 탄핵 문턱까지 갔다가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그는 95년부터 2년간 모니카 르윈스키 백악관 법률부서 인턴을 백악관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 아홉 차례나 끌어들여 성적 유희를 벌였다. 르윈스키는 직장 선배 린다 트립에게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를 재미 삼아 털어놓았고, 트립은 이를 녹음해 특별검사 케네스 스타에게 줬다. 처음에 완강히 부인하던 클린턴은 모니카의 푸른 드레스에 묻은 체액 DNA 검사에 응해야 하는 수모를 당했으며 검사 결과 클린턴의 행적이 사실로 드러났다. 미국 하원은 98년 12월 위증과 사법방해 혐의로 발의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으나, 상원이 99년 2월 12일 이 안을 부결시켜 클린턴은 겨우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모니카게이트에서는 유대인 음모설이 돌았는데 사건을 처음 보도한 기자, 르윈스키의 변호사 등 관련자 중 실제로 유대인이 많았다. 곤욕을 치른 클린턴은 중동 평화 노력을 계속할 의욕을 잃고 퇴임 시까지 중동문제 합의 이행을 더 이상 이스라엘에 강요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CIA 스캔들과 비슷한 사건이 한국에도 있었다.
2000년 4월 이양호 국방장관과 여성 로비스트 린다 김(한국명 김귀옥) 스캔들이 터지면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북 정찰기 사업(백두ㆍ금강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 장관을 비롯해 황명수 국회 국방위원장, 정종택 환경부 장관 등 당시 정ㆍ관계 고위 인사들이 김씨와 어울린 것이다. 이 장관이 김씨에게 쓴 "사랑하는 린다, 샌타바버라 바닷가에서 아침을 함께한 추억을 음미하며…"라는 내용이 담긴 연서도 언론에 공개됐다. 이 장관은 두 차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다고 시인했으며, 김씨는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 변양균-신정아 스캔들도 있다. 신정아 씨는 광주 비엔날레 공동감독을 맡는 등 승승장구했지만, 예일대 학력이 위조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당시 청와대 실세였던 변양균 정책실장과 부적절한 관계가 드러나면서 곤욕을 치렀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