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CIA 요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에서 시작된 미국의 '프리즘' 정보사찰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둘러싼 사태가 연일 확대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해명에 나서며 사태 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관련 의혹과 비난 그리고 추가적인 폭로가 이어지면서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스노든은 오바마 정부가 영장도 없이 무단으로 미국인들의 전화통화를 도청하고 전자우편은 물론 여러 가지 다른 인터넷 상의 대화나 의사소통을 염탐하면서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를 넘어서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미 공영방송인 PBS와의 인터뷰에서 “NSA의 감시프로그램에 관한 전체적인 이야기가 알려진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하며 "이 프로그램은 테러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흑인들과 30대 이하 젊은 층에서 오바마 지지율이 한 달 만에 17% 포인트가 떨어지는 등 핵심 지지층의 이탈 현상이 두드러진 것으로 볼 때 이는 오바마 정권의 도덕성에 대한 회의감을 보여주는 증거임은 분명하다. 젊은 층은 스노든의 폭로를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2008년 오바마가 대선 출마 때 했던 약속들이 헛말이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뿐만 아니라 영국도 불똥을 맞았다. 스노든은 2009년 4월 영국이 자국의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참가국 대표단에 대한 조직적인 해킹과 도청을 했다는 폭로를 추가했다. 이로써 미국과 영국의 국제적인 입장이 매우 곤란하게 됐다. 영국의 GCHQ는 암호분석·도청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으로 MI5, MI6와 함께 영국 3대 정보 기관 중 하나다. 업무 성격과 조직 체계가 미국 국가안보국(NSA)과 유사하다. GCHQ의 국제회담 첩보활동은 스파이 영화 속 작전을 방불케 했다. 회담장에 대표단 편의를 위해 마련된 인터넷 카페는 일종의 ‘함정’이었다. 이곳에 있는 컴퓨터를 이용해 업무를 처리한 대표단은 로그인 정보를 해킹당했다. 컴퓨터에 심어둔 스파이웨어 등을 통해서다. 로그인 정보는 회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됐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터키 정부의 정보가 집중적으로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GCHQ는 특히 각국 대표단이 구체적으로 누구와 전화통화를 하는지를 실시간 그래픽 화면으로 구성해 작전실 내에서 대형 스크린에 띄웠다. 수집한 정보들은 고든 브라운 당시 총리를 비롯한 G20 영국 대표단에 전달됐으며 이는 영국 대표단이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이용됐다고 했다.
 
    이 런던 G20 회의에는 한국도 참석했다.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 자리에서 북한 미사일 등 대북정책을 논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약식 정상회담에선 자유무역협정(FTA) 조기 체결이 의제였다. GCHQ가 한국 대표단도 감시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오랜 동맹국에 대해서도 도청을 했다는 스노든의 진술을 감안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폭로는 이번주 북아일랜드에서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열리기 몇 시간 전에 나온 보도였기 때문에 파장이 더욱 컸다. 또한, 영국의 한 국제 안보학 교수가 GCHQ는 NSA와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으며 때로는 하나의 기관처럼 움직인다고 발언을 한 상태여서 미국와 영국은 비도덕적인 강대국으로 함께 묶여버렸다.
4월 런던 정상회의에서 컴퓨터 로그인 정보를 빼낸 GCHQ는 이를 같은 해 9월 G20 재무장관 회담에도 사용했다. 4월 합의한 사안에 대한 터키의 속내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남아공 외무부 전산망에 접속해 G20과 G8 회의 참석 후 대표단이 작성한 보고서를 빼내기도 했다. 또 이 기간에 영국 주재 NSA 요원들은 영국과 공조해 G8 정상회의에 참석 중인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로 건 기밀 위성전화 신호를 가로챘다. 하지만 암호를 푸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폭로가 줄줄이 이어지면서 국가 정보기관의 정보 수집 범위에 대한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미국 정부는 앞서 NSA의 활동이 “테러리즘과 강력 범죄를 막기 위한 불가피한 활동”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독일, 러시아, 남아공, 터키 등 도청 대상이 되었던 국가들은 기밀해킹을 자행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을 강력하게 요청한 상태이다. 스노든은 이번 고발을 통해 오바마 정부가 정신을 차리고 합법적인 정책, 법치주의로 돌아갈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정보 당국은 계속 테러리즘과 싸우기 위해 감시 프로그램을 운용할 수밖에 없으며, 일부 프라이버시는 균형잡힌 접근 과정에서 희생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여하튼 세기의 내부 고발자로 이름을 올리게 된 스노든의 폭로로 인해 은밀한 미국의 모습이 낱낱이 공개되었고, 이로써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흔을 남기게 되었다. 이처럼 몰래한 짓을 들키고 나면 참으로 난감하다. 아무리 변명을 해도 상대는 이미 마음이 상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우리 속담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말을 조심해서 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이 듣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 함부로 말하는 것은 분명 실수다. 얼마전 지인의 전화통화를 들은 적이 있다. 필자가 옆에 있는 줄도 모르고 상대방은 필자에 대한 비난을 연발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고, 늘 다니면서 동종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이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 사람의 인격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후였다. 미국같이 거대한 정보국가 뿐 아니라 좁은 한인사회에서도 늘 새와 쥐와 같은 존재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몸에 귀는 둘인데 입이 하나인 것은 말하기보다는 듣기를 더욱 신중히 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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