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도 잠이 오지 않고, 천장이 아주 빙빙 돕니다.”
40대 초반의 남성 B씨는 좌절과 분노에 휩싸여 있다. 진료 초기 그는 자신의 발기부전과 이런 감정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잘 몰랐다.
진료가 거듭되면서 그는 회사에서 겪었던 불행한 사건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지난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던 B씨 부서의 실적부진이 도마에 올랐던 것이다. 하필이면 총책임자였던 B씨의 상사는 사건이 터지기 직전 다른 회사로 영전했다. 때문에 실적부진의 직격탄을 실무책임자였던 B씨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더군다나 회사는 분위기를 쇄신한다며 새로운 부서장을 영입했고, 그는 과거 흔적을 없앤다며 옛 부서장의 오른팔이었던 B씨부터 숙청했다. 그래서 B씨는 현재 대기발령 상태다.
“지금 저는 회사에서 팔다리 다 잘렸습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실적이 좋아지는데 왜 제가 좌천되어야 하죠?”

   B씨는 진료실에서 자신을 버린 상사와, 새로운 부서장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을 쏟아냈다. 남성에게 성취욕은 삶의 중요한 요소인데, 그는 사회적 성취에 실패하면서 심한 우울감을 겪게 되었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비슷한 시기에 아내와의 성관계마저 실패하게 된 것이다.
“회사에서건 집에서건 저는 남자구실조차 못하는 유령이었죠.”
발기 기능이 떨어진 후 그의 자존감은 더욱 바닥으로 떨어졌다. 한 번 실패하고 나니 자꾸 발기반응을 확인하려 들고, 성행위를 시도할 때마다 어떻게 해서든 정상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싶었다. 그런 간절함은 마치 좌천당한 회사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고 싶은 마음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발기에 집착할수록 ‘또 안 되면 어쩌지’라는 불안만 커졌다. 이런 불안은 정상 발기반응을 제한할 수 있다. B씨는 정신과적으로는 적응장애에 해당한다. 좌천과 대기발령이라는 강한 스트레스 이후 우울감과 좌절감에 남성심리가 좌절당하면서 심리적 ‘거세’에 빠진 것이다.
B씨와 같은 심리적 거세는 직장에서의 좌천이나 해고뿐 아니라 배우자와의 이혼·사별, 배우자의 외도, 사업실패 등에서 많이 일어난다. 특히 아내의 외도에서 겪는 분노감정은 아내에 대한 순결성 문제까지 겹치면서 상처가 오래 깊어지기도 한다. 다행히 B씨는 해당 문제에 대한 아내의 이해와 협조가 원활해 심리치료와 성 치료에 무난히 반응하며 발기반응을 되찾았다.
요즘같이 경쟁이 심하고 생존이 쉽지 않은 사회에서 B씨처럼 사회적 좌절을 겪는 남성들이 심리적 거세, 즉 심인성 발기부전에 빠지는 사례가 종종 있다. 특히 이런 상황에서 배우자인 아내가 남편의 발기부전을 비난하고 무시하려 든다면 문제는 커진다.
지금도 회사일로 온갖 스트레스에 빠진 내 남편은, 남자에게 거세에 해당할 만큼 힘든 생존경쟁의 각축장에서 하루하루 내 가족을 위해 참고 버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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