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아시아나 항공사의 보잉 777 여객기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착륙하던 중 바다와 맞닿은 활주로 입구에 충돌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중국인 승객 2명이 숨지고 180여명이 다쳤다. 한국 국적 항공사 여객기가 인명 사고를 낸 것은 1997년에 사망자 225명을 냈던 괌 추락 사고 이후 16년 만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승객과 승무원들의 침착한 대응으로 인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공항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인데다, 사상자도 중국, 미국, 캐나다 등 다양한 국적이어서 국제사회의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객기 사고에 대한 한미 합동조사가 사고 이튿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규정에 따라 사고 발생지인 미국 정부가 원인 규명을 주도하고, 한국 정부는 사고기 운용국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직 사고원인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조종사의 잘못인지 기체 결함의 문제인지 논란이 일고 있다. 사고기를 조종한 이강국 기장이 비행교육에 해당하는 관숙비행 중이어서 조종이 미숙한 탓에 사고가 났다는 주장이 논란의 핵심이다. 이 조종사는 1만 시간에 가까운 비행 경력을 갖고 있지만 이 가운데 보잉 777기를 조종한 것은 43시간에 불과하며 대양 횡단 비행에서 착륙을 시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시인했다. 하지만 기장을 도와 부기장으로 나선 이정민 조종사는 1만2390시간의 비행 경력에 보잉 777기 비행 경력만도 3220시간에 달했기 때문에 조종석에서의 문제는 없다는 것이 아시아나 측의 입장이다.
이에 반해 데보라 허스먼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은 사고 비행기가 너무 느린 속도로 비행해 사고 직전 이에 대한 경고를 받았으며, 조종사가 착륙을 포기하고 기수를 상승시키려 시도했지만 결국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고 중간 조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조종사의 잘못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속단은 이르다. 현재 가장 설득력이 있는 사고 원인이 기장의 미숙한 조종으로 몰리고 있긴 하지만 기체결함의 문제도 간과될 수 없다. 사고 비행기가 왜 이처럼 느린 속도로 비행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일에도 시카고에서 인천으로 향하던 대한항공 항공기가 왼쪽 엔진에 이상이 생겨 러시아 지방 공항에 비상 착륙했다. 이 기종도 보잉 777이었다. 며칠 전 일본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로 향하던 일본항공 002편 보잉 777기도 이륙 이후 기체 유압장치 결함으로 추정되는 문제가 발생해 하네다 공항으로 회항했다. 지난해 3월 하네다 공항에 착륙한 일본항공 항공편은 착륙 도중 기수를 올리다가 기체 뒷부분이 바닥에 부딪혀 파손됐다. 2010년 5월 오사카 공항에서도 착륙 도중 기체의 꼬리가 활주로에 닿는 사고가 있었다. 두 사고 모두 항공기에 큰 파손은 없었고 부상, 사망자도 없었으나 사고 발생 과정은 아시아나기 사고와 유사하다. 이처럼 보잉 777 기종에서 문제가 계속 있어왔기 때문에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기체 자체의 결함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1990년대 말 우리 국적 여객기와 화물기의 추락 사고가 잇따르자 미 연방항공청(FAA)은 2001년 한국의 항공 안전 등급을 불량 수준인 ‘2등급’으로 지정했었다. 당시 미국은 국내 공무원과 군인들의 한국 국적기 탑승과 한미 항공사 간 편명 공유를 제한했다. 3개월간 계속된 이 제재 기간에 우리 항공사들은 신인도 하락과 영업 손실로 수 천 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 이후 한국 정부와 업계의 노력으로 2008년 국제민간항공기구의 항공 안전 종합 평가에서 국제 안전 기준 이행률 98.89%로 세계 1위를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하면서 한국은 세계 항공산업에서 운송 강국, 안전 강국의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세계 공항서비스 평가에서 인천공항은 8연패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나 또한 세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로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올 상반기 한국 국적 항공사 비행기가 뜻밖의 사태로 비상 착륙한 사례가 7건이나 된다. 어렵게 쌓아 올린 국적 항공사들의 신인도에도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번에 사고가 난 보잉 777기종은 아시아나가 11대, 대한항공이 18대 보유하고 있다. 이들 비행기에 대해 최우선적으로 안전 점검을 실시하고 필요시 이 비행기들의 일시적 운항 중단 조치도 검토해야 한다. 국민으로서는 마음놓고 비행기를 타도 되는 것인지 불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원인 규명이 급선무다. 항공기 사고는 터졌다 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정하고 철저한 조사로 재발을 막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복잡다단한 요인들을 정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항공기 사고 조사기간이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리는 이유다. 한국 정부는 오직 사실에 근거해 미국 정부 및 공항, 항공기 제조사 등과 협력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항공사 측과 함께 희생자들의 피해보상 등에도 만전을 기해야 한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희생자 유가족과 사고 승객들을 위로하고 이들이 가급적 이른 시간 안에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정신적, 심리적 트라우마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한다. 최대 인명 피해를 본 중국은 물론 미국, 캐나다 등 여러 국가가 관련이 있는 만큼 한국 정부는 원인 규명이나 후속 대책 과정에서 국격에 걸맞은 선진화된 수습 능력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