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 피로연의 사회를 보시던 목사님이 재미있는 말을 하셨습니다. 어떤 청춘 남녀가 펜팔로 교제를 하다가 결국 남자가 보낸 편지에 ‘당신의 사진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결혼하자’ 그래서 둘이 결혼하기로 하고 만났습니다. 그런데 만나보니 남자의 한눈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여자가 묻기를 ‘아니 왜 한눈이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남자는 ‘했다고’ 여자는 ‘언제 했냐고?’ 그때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내가 한눈에 반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요즘 세대는 이런 유머가 안통하지요. 펜팔이라는 말도 60대 이상 어른들만 아는 향수 아련한 엔틱에 불과합니다. 이제 ‘한눈에 사랑에 빠졌다’라는 사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듭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재고, 재고, 또 재고나서, ‘이 정도면 밑지지 않겠다’ 하고 상대를 고르는 것 같습니다. 서로 첫눈에 반했다는 커플을 만나보아도 스펙이 비슷합니다. ‘일단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키는 상대중에서’ 첫눈에 드는 상대를 만났다는 말이지요.
요즘 사랑, 이기적입니다. 참 계산적입니다. 한 10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부쩍 심해진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결혼정보회사’가 성업하는 것도 그 이유가 있습니다. 보도자료를 보면 여성의 등급을 5등급으로 나누고, 그 등급이 1단계 상승할 때마다 남편의 연봉이 324만원씩 높아진다고 하더군요. 여자입장에서는 예쁠수록 연봉이 높은 남자를 만나고, 남자 입장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야 예쁜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머릿속 계산기를 연방 두들기며 사랑을 가늠해야 한다니! 우리 아나로그 펜팔 세대는 생각만 해도 피곤합니다.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내일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절실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사랑이 무척 그리운 시대입니다.

    오랫동안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 배우자 만나기를 기도해왔던 한 딸이 결혼하여 떠나며 엄마 아빠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죠? 표현은 못해도 정말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표현은 커녕 엄마 아빠 속상하게 하고 힘들게 하고 도움이 안 될 때가 너무 많았던 것 같애요. 너무 죄송해요. 언제나 미안한 마음뿐...그리고 한없이 감사할 뿐...나중에 천국가면 우리 서로에게 기쁜 마음만 전할 수 있겠죠? 이 미숙한 자식을 용서하세요. 그래도 엄마 아빠를 끔찍이 정말 끔찍이 사랑한답니다. 알라뷰∼. 여태껏 날 어른되게 하느라고 많이 고생하신 것 이제 제2의 인생길에 많이 갚도록 노력할께요. 아직 덜 성숙한 저희들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잘 해나가리라 믿습니다! 열심히 살고 또 최선을 다해 부모님들과 남편에게 잘 할테니 두고 봐 주세요. 엄마 아빠의 기도가 있었기에 제가 이렇게 만남의 축복과 언제나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말씀에도 <사울>이 기도하기에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보냈듯이, 엄마 아빠의 기도로 제가 그나마 하나님께서 예비해주신 길로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 엄마 아빠, 오늘 밤 감사 또 감사하며 이 편지를 씁니다.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해요. 영원히∼’ 서투른 한글 표현으로 요즘 아이들이 정말 쓰기 힘든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그 사랑으로 만나고 그 사랑으로 결혼한 이 자녀의 글이 눈물겹지요?

    예수님은 죽을죄가 없는 분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힐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오직 우리를 가치로 보지않고, 외모도 보지않고, 학벌도 보지않고, 잘났던 못났던, 한눈에 반한 사랑 ‘나의 누이 나의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 네 눈으로 한 번 보는 것으로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악4:9)으로 사랑하기에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다 이루었다’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다 이루었다’라는 사랑은 90%도 아닙니다. 99.9%도 아닙니다. 이 말은 ‘테델레스타이’라는 상업적인 용어로. ‘완전히 다 빚을 완불했다. 더 이상 죄의 빚은 없다’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뭐 더 할게 없습니다. 보태고 뺄 것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이 완전한 사랑이 나의 것이 됩니다. 그저 예수를 나의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을 베풀고 그 사랑을 전하며 살면 되는 것이지요. 결혼을 앞둔 우리 자녀들이 다 이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살면 좋겠습니다. 시인 <서정윤>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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