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신문 마감날 오후였다. 기사 마감을 모두 마치고 교정을 보고 있는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급한 기사 제보가 있으니 기다려 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그래서 얼마나 중요한 일이기에 그러나 싶어 기다렸다. 워낙 기사 욕심이 많은 터라 좋은 기사라면 당연히 내 보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기다린 보람이 있을 정도로 정말 중요한 제보였다. 불법체류자에게 운전면허증을 발급해준다는 것이다. 그것도 오늘부터라고 했다. 취재원의 신분이 현직 경찰관이고, 그날 오전에 면허증 발급에 관한 오리엔테이션까지 참석해서 가져온 자료이기 때문에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세미나에서 받아온 서류까지 꼼꼼히 준비해 온 터라 더욱 의심할 부분이 없었다. 그래서 기자는 30여분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기사를 작성했다.
설령 불체자로 살지 않아도 영주권이 없는 이상 운전면허증을 발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귀찮은 일인지 필자는 경험을 통해서 너무 잘 안다. 신분을 증명해주는 서류를 따로 가져가야 하고, 혹 비자 종류를 알아보지 못하는 운전국 직원을 만날 때면 더욱 난감해진다. 예전에는 결혼 증명서를 영문으로 번역까지 해서 들고 갔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받은 면허증 유효기간은 고작 2년 정도였다. 그래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가려면 일주일전부터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었던 것 같다. 합법적인 체류자에게도 면허증 발급은 까다로운 수순이었다. 그래도 불법체류자들의 처지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면허증 없이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좌불안석이고, 속도 위반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는 경찰만 봐도 가슴이 철렁하는 주변의 불체 지인들을 보면서 늘 안타까웠다. 도대체 신분이 뭐길래 이 타국에서 운전 한번을 편안하게 못하고 ‘불법’이라고 분류되어야 하는 것인지, 생각할 때마다 이민살이가 서럽고 분했다.  

     그날 포커스는 이런 서글픈 이민생활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어 취재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루빨리 희소식을 동포사회에 전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확실한 신분의 취재원과 소스, 그리고 파커의 운전국 직원에게 확인까지 했다는 그의 단호한 의견에 한치의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취재원 본인 또한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지난 월요일 신문사로 사과의 뜻을 전해왔다. 그러나 신문사에서 이를 한번 더 확인했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필자는 지난 10년 동안 덴버에서 기사를 쓰고, 기자가 쓴 기사에 교정을 봐 왔지만 이번과 같은 경우는 참으로 뭐에 홀린 듯하다. 보통 기사를 제보 받으면 확인절차를 통해 기사를 써야 할 것인 지, 아닌지를 결정한다. 물론 대부분 개인사의 경우에는 실지 않는 것을, 그리고 확인 과정을 원칙으로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면허증 발급 관련 담당 경찰관이 정확하게 <effective date: Aug 7> 이라고 적혀진 문서를 가지고 왔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정확한 내용임을 재차 강조한 경우였기 때문에 확인절차가 전혀 필요치 않았다. 그러나 기사가 나간 후 여럿 사람들이 문의를 해오면서 보강취재를 하게 되었고, 거기서 8월7일부터 효력은 가지지만 운전국측에 준비시간으로 1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내년 8월부터 발급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여 년 동안 언론사에 몸담으면서 대통령(大統領)을 개통령(犬統領)으로, 살아있는 사람을 부고란의 주인공으로, 0이라는 숫자를 한 개 더 붙여 10배나 비싼 집으로, 한 연예인의 남동생은 그녀의 애인으로, 살인자가 피해자로, 애국자가 간첩으로 둔갑했고, 정치인들을 둘러싼 진실공방에 대한 기사 또한 다음날 바로 정정보도가 나오는 것 또한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것도 한국의 언론 자존심이라고 하는 4대 일간지에 실린 내용들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황당한 사태는 드물다.

     지난주 신문발행 후 필자는 그 동안 가지고 있던 신문 보도에 대한 기준이 잠시 흔들렸다. ‘도대체 어느 선까지 확인절차를 해서 기사를 내보내야 하는 것일까’하고 말이다. 이번 경우는 주지사까지 확인절차를 했어야 한 것일까. 하지만 기사의 확인 절차는 담당 공무원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를 확인을 해 주는 공무원 입에서 나온 소스가 틀렸다면 이는 정말 난감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번 경우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실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취재원의 잘못된 정보이건, 기자의 확인절차상의 실수이건, 모든 책임은 오너인 필자에게 있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더욱 든든한 신뢰의 벽을 쌓을 수 없기에 끝까지 확인을 하지 않은 잘못을 과감히 인정하기로 했다. 잠시 나태해지려는 찰나에 일어난 해프닝이기에 더욱 움찔했던 것 같다. 지난 한주간은 초심으로 돌아가 언론인의 자세를 다시 한번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수 배운 기분이다. 항상 의심하고, 재차 확인하는 언론인의 본분을 절대 잊지 말라는 교훈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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