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도착했을 때는 이른 새벽이었다. 어둑어둑한 새벽안개 속에서도 다른 유럽도시와는 다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휑한 기차역 광장 앞에는 휴지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날리고 있고, 버스 정류장에는 허름한 옷깃을 여민 노숙자들 몇몇이 모여 밤새 못다 잔 잠을 청하고 있었다. 내 몸보다도 큰 배낭을 짊어지고 예약된 유스호스텔로 발길을 잡았는데 우연인지 가는 길목에는 암스테르담 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공창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홍등가이다. 이 곳 공창은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곳이기도 하다. 유스호스텔을 가려면 반드시 그 홍등가를 지나야 한다. 유스호스텔이라고 하면 대부분이 여행객들, 특히 배낭족들이 많이 이용하는 저렴한 호텔이다. 고객의 대부분이 대학생과 젊은이들이다. 이른 새벽에 그 길을 지나갔을 때는 화려한 조명을 보지 못했다. 체크인을 하고 점심을 먹고 한숨 자고 일어나 동네 구경을 나갔을 때였다. 열 서너 살 즈음 보이는 소년이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화끈한 밤을 약속한다는 문구와 대여섯 명의 여성들이 옷을 벗은 채로 겹쳐 누워 있었다. 그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리화나를 1달러에 판다는 얘기도 늘어놓았다.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세계적인 외환은행, 유럽 최대의 어음교환지역, 국제 금융의 중심지라는 지식을 가지고 들렀는데, 실지로 접한 이미지는 달랐다. 암스테르담의 이미지는 문란(紊亂)했다. 그 소년과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역전을 돌아 시내로 나왔다. 버스 정류장 옆으로 즐비해 있는 상점에서 내놓은 상품들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대부분이 보기에도 민망한 사진이 박혀있는 엽서와 성인 장난감들이었는데, 물건에는 마치 관광 기념품으로 판매라도 하듯 암스테르담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그 물건을 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소년도 홍등가 앞에서 만난 그 소년과 비슷한 또래였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고 이틀 후 였다. 그 날도 대충 유명 관광장소를 둘러보고 유스호스텔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 홍등가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여성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필자를 보고 꺼려했지만 며칠 째 계속 만나는 얼굴이어서 그런지 먼저 말을 걸어왔다. “한국사람이죠?” “예……” 잠깐의 침묵이 흐르고 나는 곧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다. “저렇게 어린 애가 전단지 돌리고, 마리화나 팔아도 되요?”라고 말이다. 그녀의 답은 간단했다 “다, 그래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자연스레 성생활이 문란해질 기회가 많이 생겼고, 이제는 섹스 박물관이 오픈 됐을 정도로 십대들에게도 성문화가 개방되어 있었다. 정부에서도 미성년자에 대해 큰 제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성인들에게만 보여진 문화들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청소년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너무 자주 접하다 보니 무감각해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옛말이 있다. 처음에는 가랑비쯤이야 어떻겠느냐고 생각하지만 가랑비를 계속 맞다가는 옷이 아예 다 젖어버린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바늘만 훔치다가 나중에는 아예 정식 소 도둑놈으로 나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한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다소 목소리가 격앙되어 있었다. 착하고 공부 잘하는 아들이 마리화나 처방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 책상을 정리하다 무심코 집어 든 종이가 마리화나를 처방 받을 수 있는 등록증이라는 것을 알고는 주체할 수 없이 가슴이 뛰었다고 했다. 그 어머니도 주변에서 자식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부모를 볼 때마다 “우리 애는 안 그래”, “우리 애는 착한데 주변 애들이 나빠서 물들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철석같이 믿었던 아들이, 거짓말 같은 것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들이 몰래 마리화나에 손을 댔다는 사실에 놀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리화나를 복용한 후에 아들에게 변화가 생겼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미안해했다. 이민 온 이유는 자식 교육 잘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돈 번다는 이유로 자식들에게 제대로 신경을 쓰지 못한다면 먼 타국에서 고생하면서 살아야 하는 의미가 없어지는 게 아니냐 며 한숨을 내쉬었다.

콜로라도 주에도 의약용 마리화나 판매가 합법화 되면서 갖가지 문제점이 나오고 있다. 3백 달러만 주면 멀쩡한 애들도 환자로 둔갑하는 소견서를 만들어 내는 일부 의사도 문제다. 의사의 소견서만 믿고 마리화나 처방을 승인하는 정부 부서도 문제다. 그리고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는 친구들도 문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자식들에게 관심이 없는 부모들이다.

신문사로 전화한 그 학부모는 다행히 일찍 알아차렸다. 그래서 우리 예쁜 자식들이 마리화나에 병들게 내버려 두면 안 된다 는 생각에 신문사로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마리화나 자체가 위험한 것은 아니다. 마리화나가 마약, 코케인으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시발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횟수가 거듭될수록 그 행위에 무감각해질까 두려운 것이다. 소 도둑이 되기 전에 알아차리는 길은 자녀에 대한 관심밖에 없다. 그리고 때로는 단순한 관심보다 적극적인 간섭이 필요하기도 하다.


<편집국장 김현주 >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