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교수님이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속에 이런 시를 쓰셨습니다. ‘내가 살 집을 짓게 하소서/ 다만 숟가락 두 개만 놓을 수 있는/ 식탁만 한 집이면 족 합니다/ 밤중에는 별이 보이고/ 낮에는 구름이 보이는/ 구멍만 한 창문이 있으면 족 합니다/ 비가 오면 작은 우산만 한 지붕을/ 바람이 불면 외투자락만한 벽을/ 저녁에 돌아와 신발을 벗어 놓을 때/ 작은 댓돌 하나만 있으면 족 합니다/ 내가 살집을 짓게 하소서/ 다만 당신을 맞이할 때 부끄럽지 않을/ 정갈한 집 한 채를 짓게 하소서/ 그리고 또 오래오래/ 당신이 머무실 수 있도록/ 작지만 흔들리지 않는/ 집을 짓게 하소서/ 기울지도/ 쓰러지지도 않는 집을/ 지진이 나도 흔들리지 않는 집을/ 내 영혼의 집을 짓게 하소서’
정말 그분은 지금 이런 집에 살고 계실까? 버클리 나오고 하버드 법대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손주 유진이가 이유없이 갑자기 코마 상태에 빠진 채 세 주 만에 천국으로 갔을 때, 그리고 얼마 후 그렇게 사랑하던 딸 민아마져 천국으로 갔을 때, ‘마치 내 몸에 배터리가 나간 것 같다’ 라고 말하던 이어령 교수님은 ‘정말 이런 집을 준비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에 무엇이 더 그분에게 필요할까요? 인생은 중요한 것을 잃을 때 비로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미국에 사는 것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미국의 삶의 패턴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습니다. 내야 하는 Bill이 너무 많다는 것이지요. 처음 이 미국에 왔을 때 어떤 분이 ‘이 미국은 빌빌하다가 캐딜락타고 가는 나라’라고 하던 말은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정말 실감하고 삽니다. 매월 초 날라온 Bill을 정리하고 Check를 써서 보낼 때마다 ‘어서 나도 아무것 없이 아무것 내지 않고 살 수 있는 집에서 살았으면...’ 그런 마음이 듭니다. 이어령 교수님이 짓고 싶다던 그런 집말이지요. 얼마나 마음이 가볍고 평안할까요?
사실 한국에서는 절약하려면 어느 정도는 절약이 가능합니다. 손님이 오거나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는 목돈을 쓰지만, 한 두 달만 잘 절약하면 그 액수를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 미국에서 절약이란 상상도 못합니다. 기본적인 생활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나게 높기 때문이고, 집값도 장기 분납제로 되어있어서 그렇지 굉장히 비싼 집에서 살고 있는 셈입니다. 15년 지불액을 이자까지 합치면 웬만한 집이 수억 짜리요, 성장한 아이들이 있으면 식구대로 자동차를 가져야 하고, 온 집집마다 푸른 잔디위에 살 수 있는 비결은 엄청난 물 값을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의료보험증을 가지고는 있지만, 병원도 제대로 갈수 없습니다. 병원 갈 때마다 돈은 돈대로 내야하고, 그것도 한 달에 꼬박꼬박 내는 보험비가 실로 만만치 않아서 그게 오히려 병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가 영 찜찜합니다. 오늘도 마치 지붕이 없는 집에 살고 있는 기분입니다.
근래 엄청난 폭우로 재난을 당한 분들이 많아 참 마음이 아픕니다. 100년만에 쏟아진 폭우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7:24-27)
오래전 <대지진>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건축업자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이 맡은 건축물을 지나칠 만큼 철저하게 설계하는 사람 이였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고층의 빌딩을 지어달라는 의뢰가 들어왔고, 그는 자신의 신념대로 철저한 설계와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건물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산 초과와 길어지는 공사시일로 건물주는 계속해서 압력을 가했고, 심지어 그 주변 사람들마져도 그 건축자를 비웃고 그의 철저한 신념까지도 의심하여 조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끝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마침내 완벽한 건물을 완공하고야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그 도시에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갈라지는 땅속으로 부실하게 지어진 건물들이 맥없이 꺼져 들어갔고, 댐까지 무너져 모든 시가지가 물에 잠겼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당당하게 버티고 서 있는 건물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철저한 설계와 공사로 세운 그 건물이였습니다. 빤한 이야기이지만, 참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이 미국은 돈 위에 세워진 나라입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하루아침에 마비될 수밖에 없는 부실한 기초위에 세워진 나라가 이 미국인 것 같습니다. 이런 불확실한 기초위에 사는 우리는 내가 살 집을 믿음의 반석위에 굳게 짓는 그런 연습을 매일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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