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 시즌이 시작됐다. 덴버 브롱코스가 3연승을 기록하면서 수퍼볼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탄탄한 수비력과 발빠른 공격력을 내세우며 브롱코스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지난 시즌 브롱코스는 파죽의 11연승을 올리며 1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결국 수퍼볼 진출이 좌절됐다. NFL 최고 승률팀이었던 덴버는 플레이오프 1라운드를 부전승으로 통과하면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덴버의 승리를 점쳤었다. 모두가 세기의 쿼터백 ‘페이튼 매닝’을 앞세워 11연승으로 정규시즌을 끝마친 덴버의 상승세를 꺾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덴버는 그만 볼티모어에 발목이 잡히고 말았다. 아쉬움 속에 지난 시즌을 마감해야 했던 덴버는 또 한번의 신화를 쓰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강한 팀으로 무장해 이번 시즌을 시작했다.

     필자는 풋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시간에 풋볼(Football)과 축구(Soccer)의 차이점을 설명하는 선생님 또한 풋볼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풋볼은 단지 미식 축구라는 어학적인 의미만 내게 남겨져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풋볼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덴버가 연승 행진을 이어가면서 스포츠 대표채널인 ESPN을 매일 장식하는 것을 보고 브롱코스가 멋져 보이기 시작했다. 경기규칙조차 모르던 필자가 브롱코스의 화려한 연승 행진에 반해 풋볼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일종의 소속감으로 시작된 관심이었다. 그러다 차츰 풋볼을 보는 동안 여느 미국인들처럼 피자와 치킨, 맥주 마시기를 따라 하더니, 스포츠 용품 전문매장에 걸려있는 페이튼 매닝의 티셔츠와 브롱코스의 마크가 찍힌 주황색 모자에도 손이 가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매닝에 대한 극찬을 늘어놓으며 수퍼볼까지 문제 없이 갈 것이라며 호언장담했다. 물론 친구는 예전의 나처럼 풋볼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급기야 큰 아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우리 네식구는 지난 월요일 풋볼 경기장을 찾기에 이르렀다.
깜짝 놀랐다. 그 많은 인파에 입이 떡 벌어진 것이다. 일단 주차할 곳이 없었다. 도로변에 있는 잔디밭에 마치 차를 구겨 넣듯이 해서 간신히 주차를 해야 했다. 경기장까지는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데, 평소 걷기 싫어하는 작은 아들도 사람 물결을 따라 열심히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걷고 있었다. 이 경기를 보러가기 전까지 딕스 스포츠용품 전문매장을 세번을 찾았다. 브롱코스 티셔츠를 입고는 가야 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쌌다. 살까 말까 몇 번을 망설이다가 큰맘을 먹고 4장을 샀다. 그런데 이렇게 망설이면서 샀던 티셔츠였는데 이날 경기장을 찾은 7만6천여명의 대부분이 입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월요일 저녁에 할일 없는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한 장에 100달러 가까이 하는 티셔츠를 이렇게 많이 입고 오다니, 경기내내 비싼 맥주는 왜 저렇게 계속해서 주문해서 마시는 걸까. 조용히 관람하면 될 일이지 왜 발을 굴리고, 괴성을 찌르면서까지 응원하는 걸까. 하지만 이런 생각들은 경기가 중반에 접어들어면서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내게 풋볼이라는 스포츠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브롱코스 때문이다. 주변 사람들이 시즌만 시작되면 브롱코스에 푹 빠진다. 경기때마다 이들은 함께 모여 한 팀을 응원하는 동지가 되어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마치 한국 대표팀이 출전한 월드컵 경기를 보는 듯했다. 브롱코스가 패하기라도 하면 안타까워하면서 경기 당시의 실수와 미비했던 전략을 몇날 며칠을 곱씹으며 왠지 모를 동질감에 휩싸인다. 모국을 떠나 뿌리가 필요했던 우리들에게 마치 공통분모를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필자의 콜로라도 사랑이 더욱 두터워진 것은 이런 스프츠 게임을 보러가면서 시작된 것 같다. 얼마전 덴버 너겟츠 게임을 보러 갔었다. 우연히 생긴 티켓을 그냥 버리기가 아까워 아들 녀석들과 함께 펩시 센터를 찾았다. 고교시절 이충희 선수를 보기 위해 뻔질나게 다녔던 농구장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처음 찾는 경기장이라 낯설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너겟츠를 연호했다. 볼이 들어갔건 안 들어갔건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다. 열성 팬들에 휩싸여 관람을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도 손바닥이 빨개질 정도로 응원의 박수를 치고 있었다. 경기 후 우린 멀리 떨어져 있는 주차장까지 걸어가며 마치 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처럼 즐거워하면서 웃음을 나눴다. 아이스하키의 애벌렌치 팀을 보러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응원하면서 어느새 진짜 콜로라도 주민이 되어버린 듯 했다. 그래서 다음달에 한국을 방문할 때 만나게 될 한국의 조카들에게 덴버를 대표할 무언가를 선물하고 싶어 고심하다 결국 브롱코스 티셔츠를 샀다.
우린 스포츠의 힘을 이미 알고 있다. 스포츠가 감동스러운 이유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동료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옆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몇달 전 출범식을 마친 각 한인회들에게 다양한 체육대회 개최를 강력히 추천한다. 짚 코드별 운동회 정도면 어떨까. 비록 적은 규모의 대회일지라도 스포츠는 모두가 하나되는 힘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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