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미국과의 관계 남과 달라

      북한이 미국을 상대로 승부수를 띄우고 있다. 북한은 '우리와 평화를 할 것인지 전쟁을 할 것인지 양자택일하라'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북한은 미국보다 약한 나라다. 그런데도 자신만만하게 미국을 상대하고 있다.  이런 태도에 담긴 심리적 원동력을 파악하는 방법 중 하나는 북한이 겪은 역사적 경험을 분석하는 것이다.
미국과의 관계가 처음 시작된 19세기 초중반 당시, 조선이 미국에 대해 가진 일반적 정서는 '무시'였다. 조선의 입장에서는, 청나라, 일본, 대마도(1869년까지 독립세력), 유구(오키나와)와만 무역을 해도 별로 불편할 게 없었다. 미국 등 서양열강과 굳이 통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선은 미국을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조선이 계속해서 통상을 거부하자, 서양열강은 무력적 방법으로 조선 시장을 개방시키려고 했다. 미국과의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 프랑스와의 병인양요(1866), 미국과의 신미양요(1871)가 발생한 것은 그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을 계기로 1860년대 및 1870년대의 조선은 미국에 대해 자신감을 품게 됐다. 무시라는 감정이 자신감이라는 감정으로 바뀐 것이다. 실권자인 흥선대원군이 한성 종로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세운 척화비 속에는 미국에 대한 자신감도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었다.
제너럴셔먼호 사건과 신미양요를 겪은 미국은 그 뒤로는 조선에 직접 접근하지 못했다. 그 후의 미국은 일본과 청나라의 알선을 거쳐 조선에 접근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선을 직접 상대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조선의 정서는 1880년대부터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이때는 흥선대원군이 실각하고 고종이 직접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뒤였다. 젊은 개화파 관료들이 정국을 주도하던 때였다.
아버지의 시대를 청산하고 자기의 시대를 열어야 했던 고종은 미국 등 서양열강을 끌어들여 한반도 정세를 바꾸는 방법으로 정국 주도권을 강화하고자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미국에 대한 동경심은 실망감과 중첩되기 시작했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미국은 '조선이 시장을 개방하면, 향후 조선이 어려울 때에 적극 돕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은 조약 제1조에 반영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급기야 미국은 1905년에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어 일본의 조선 지배를 후원하기까지 했다. 일본이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지지하는 대신, 미국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지지하기로 한 것이다.
1945년 이후로 북한은 남한과 정반대의 대미관계를 겪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미국에 대해 품는 정서는 남한이 품는 것과는 상반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해방 직전의 대미 감정은 남과 북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변모했다.
북한은 1945년 이후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였다. 우선, 북한은 해방 5년 만에 일으킨 한국전쟁을 휴전협정으로 끝냈다. 세계 최강 미국이 포함된 한미연합군과의 전쟁을 승전도 패전도 아닌 휴전으로 끝낸 것이다. 또 1968년 푸에블로호 사건, 1969년 미군 정찰기 격추사건, 1976년 판문점 사건, 1993년 제1차 핵위기, 2002년 제2차 핵위기 등에서도 북한은 미국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다.
적대적 관계 속에서도 미국에 적지 않은 상처를 입혔기 때문에, 해방 직전의 동경심이 더 이상 첫째 자리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해방 이후의 경험은 미국에 대해 적대감을 품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1860년대 및 1870년대의 자신감을 되살리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지금은 적대감과 자신감이 북한의 대미 감정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여타 감정은 의식 저변에 깔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자신감이 북한에서 되살아났다는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1880년대 이후 억제된 대미 자신감이 몇 차례의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해방 뒤의 북한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한번 억제된 감정이 되살아나면,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한 감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객관적 국력에서 뒤처지는 북한이 미국을 자신만만하게 압박하는 이유 중 하나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