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이 차가운 시대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길을 제시해주어야 할 교회가 방향을 잃고 갈팡질팡하다가 오히려 세상을 쫓아가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세상의 소금이 되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진리의 소리를 외쳐야 할 교회가 오히려 부패하고  서로 판단하고 비방하는 시끄러운 꽹과리가 되어 버린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교회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교회를 떠나고 있고 교회의 존재가 있으나 마나 한 소수를 위한 소수의 집단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입니다.
2000년 전 십자가에 매달려 죽어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이 바로 오늘날 교회를 바라보는 현대인의 시각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을 로마의 폭압에서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주목하며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정복해야 할 대상인 로마 병사들에게 조롱당하고 매를 맞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너를 스스로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라며 예수님을 모욕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했던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모든 사람들이 떠난 후 예수님은 내려져 홀로 무덤에 묻히게 됩니다.  그의 죽음은 역사에 묻힌 평범한 한 청년의 죽음에 불과했고 예수님의 죽음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사람들은 새로운 하루를 살아갔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사람들은 동일한 반응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교회의 죽음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별 차이 없이 하루를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이 역사를 뒤바꾸는 변화의 출발이 된 이유는 그 죽음이 끝이 아니라 바로 부활을 위한 침묵의 준비였기 때문입니다. 3일 후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가 바로 이 세상이 기다리던 구원자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선포합니다.  그 부활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결정한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도구로 삼으신 교회를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제자 공동체가 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무시하고 조롱하고 핍박하던 유대인들과 로마인들에게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의 산 증인들이 되어 이 땅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이 시대의 교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부활의 능력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듯이 죽은 자 같은 현대의 교회가 부활의 능력되신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두려움과 불안함 속에 눌려있는 세상을 향해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지어다”라고 선포할 수 있어야 하고 이기심과 안일함에 사로잡혀 있는 세상을 향해 “가서 모든 민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과 낙심으로 눈물 흘리고 있는 세상을 향해 “예수님이 너와 함께 하시리라”고 위로할 수 있어야 하며 욕심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버린 세상을 향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예수님께 있으니 자유하라”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부활의 시작이었듯이 오늘날 죽은 것 같은 교회의 무기력함과 무능력이 끝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해야 할 교회의 회복의 출발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소수의 바람이 아니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대적 소명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예수님의 복음과 기쁜 소식을 전하기로 결정하셨고 그 복음을 듣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세상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하나님의 소망되신 덴버의 모든 교회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으로 회복되어 다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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