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이 23년 만에 다시 공휴일이 되었다. 1991년 공휴일이 너무 많아서 경제발전에 지장을 준다는 명목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가 올해부터 다시 부활한 것이다. 567돌 한글날을 맞아 집집마다 국기가 게양됐고, 전국 방방곡곡에서는 한글 문화축제가 열렸다. 광화문에 세워진 세종대왕 동상에는 3차원 입체영상이 쏘아지면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이처럼 한글날이 창제 500년이 지나서야 다시 한번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문화유산인 한글의 소중함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에 대한 관심이 일시적으로 한글날에만 반짝하고 끝나서는 안 된다.
1940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 원본의 말문에 해당하는 날을 추정한 결과, 늦어도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에는 훈민정음이 반포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하여 10월 9일이 한글날로 확정되었다. 한글날의 원래 이름은 ‘가갸날’날이었다가 일제 강점이었던 1928년 ‘한글날’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찌됐던 한글날의 지금 날짜인 10월9일은 광복 이후에야 온전히 굳어지게 된 것이다.   

    한글의 우수성은 디지털 시대가 발전되어 갈수록 빛을 발한다. 표음문자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전 세계 공통 발음기호로 한글을 내세우는 언어학자들이 있을 정도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 한글은 우수한 문자학적 가치도 돋보인다. 얼마전 휴대전화 문자 입력에서 영어 알파벳과 일어 히라가나, 한글을 비교하는 실험을 했다. 각 언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60대를 대상으로 각자 공통된 뜻을 가진 문자 내용을 더 빨리 입력할 수 있는지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이 진행됐다. 결과는 한글이 영문과 일문보다 빠른 입력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한글 창제의 제자 원리와 관련이 깊다.
이처럼 한글은 문화적, 과학적 가치를 지닌 우수한 문자다. 찬란했던 조선 문화의 상징이며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다. 창제자와 창제 이유를 아는 세계 유일한 문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로 훈민정음 해례본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사실 고유한 글을 가진 국가는 전 세계를 통틀어 20여 곳 남짓하다. 한 민족이 글이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우리는 이에 자부심을 갖고 일상생활에서 한글을 가꾸고 지켜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세계가 인정한 한글이지만 정작 한국인의 한글 사랑은 그다지 깊지 않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의 지난친 학구열은 가나다보다 ABC를 먼저 배우게 했고, 한국어 만화보다 영어로 된 만화를 접해야 귀가 트인다며 한국말도 못하는 세살배기 아이에게 영어 만화영화만 줄기차게 보여주고 있다. 한 달에 150만원이 넘는 영어 유치원은 일찌감치 등록이 마감된다. 공공행사에서 잘못된 표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되는가 하면 방송 등 언론기관에서 사용하는 용어에도 문제가 많다. 공문서, 도로 표지판, 유적지 표석 등에 글자가 틀린다. 특히 인터넷이나 모바일에서의 언어 파괴 현상은 심각하다. 신조어가 난무하고 이모티콘, 줄임말 등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문법상 잘못된 표현, 틀린 맞춤법이 예사로 사용되고 있다. 청소년들의 욕설, 은어, 비속어 사용은 도를 지나쳤다. 대학생들조차 맞춤법이 엉망인 경우가 많다. 멀쩡한 우리말을 두고 외래어를 쓰는 것도 바로잡아야 한다. 길거리 간판이나 상표명, 단체이름, 전문용어 등에 외국어가 범람하고 있다. 국제화 시대에 외국어를 피할 수는 없지만, 한글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데 꼭 외국어를 써야 할 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요즘 가장 문제시 되는 건 욕설이다. 욕설이 생활이 되다 보니 중 고등학교에서는 ‘욕설 없는 주간’ 이라는 캠페인을 펼치는 등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다. 특히 문자를 보낼 때는 더하다. 듣는 것보다 글로 쓰여진 욕을 보면 더욱 인상이 구겨진다. 이런 욕들을 접할 때마다 욕을 하는 사람이 무서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더 우스워 보일 뿐이다. 상대의 인격을 더욱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도 몇 년 전에 욕이 잔뜩 적힌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장장 2장에 걸쳐 타이핑으로 쳐서 필자에게 보낸 편지였는데, 읽다가 그만 두었다. 욕을 하는 것은 알겠는데, 맞춤법은 온데 간데 없고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히려 편지를 보낸 사람의 인격만 최하로 떨어졌을 뿐, 그들이 얻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많은 욕을 타이핑 치는 손가락이 부끄럽지 않았을까, 만약 그 편지를 나중에 그들의 자녀들이 본다면 자랑스러워할까. 아름다운 한글로 이렇게 다양한 욕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에 새삼 놀랐다. 하도 기가 막혀 고소장을 작성할까도 생각해 봐지만, 이러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은 아예 무시하는 편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결정해 그냥 넘겼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면서 우리 2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한글이, 어른들의 잘못된 사용으로 의미를 잃을까 걱정된다. 아이들의 욕설이 늘어난 것도 분명 어른들의 삶에서 배운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자신하는 한글이 우리 때문에 가장 추악한 말로 변질될 수 있음도 명심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욕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자신만을 향하는 욕설이길 바란다.
더불어 한글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 때 먼 이국 땅에서 한글발전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아봐야 한다. ABC보다 가나다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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