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도, 구구단 외는 것도 지긋지긋합니다.”
필자는 조루 남성들의 이런 절규를 자주 듣는다. 조루는 성기능장애 중에서 가장 높은 유병율(20-30%)을 차지한다.
사랑의 감정을 만끽해야 할 침대에서 애국가나 구구단을 외우면서 흥분을 피하려는 남성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런 습관은 문제를 과학과 논리로 대처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버티려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기능은 자율신경계 반응과 밀접하다. 억지로 참고 버티거나 컨트롤하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행위시 딴 생각을 하면 잠시 흥분이 줄고 이로 인해 좀 더 시간이 연장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회피(avoidance)다.
그런데 문제를 회피하면 그 두려움은 더 강화된다. 조루 환자들은 성행위의 흥분감을 견디지 못해 사정조절에 실패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성흥분을 피하기만 해서는 성적 자극이 점점 낯설게 되고 성행위시 가벼운 자극만 받아도 불안과 긴장감이 커진다. 교감신경이 더 불안정해져서 사정 조절은 더 힘들어진다. 이런 식으로 조루는 악화되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가장 각광받는 조루 치료법은 약물치료와 행동요법의 병합이다. 의학 교과서나 외국 의료진이 인정하는 주치료법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효과가 불분명하고 부작용 위험성으로 인해 국제 학계에서 주치료법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시술이 더 유행하고 있다. 더군다나 행동요법의 의미를 의료진조차 명확히 모르다 보니 조루 남성들에게 엉뚱한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당연히 효과는 없다.
행동요법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보면 그저 ‘성행위시 사정직전에 참는 것’이라는 표현이 허다하다. 이게 얼마나 한심한 소리인가. 조루가 있든 없든 좀 더 오래하고 싶을 때 참아보지 않은 남자가 어디 있겠는가. 어쩌다가 행동요법이 이렇게 알려졌는지 몰라도 행동요법은 단순히 사정직전에 참는 게 아니다.
오히려 행동요법은 억지로 버티고 자극을 피하는 것 보다는 자극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요구한다. 가능한 느긋한 상황을 전제로, 성흥분 반응을 견딜 수 있는 수준에 따라 단계를 정한 다음, 자극에 단계적으로 적응하도록 하는 노출치료가 행동요법이다. 또한 약물치료와 적절히 병합될 때 그 치료 효과는 더욱 상승한다.

    화제를 돌려, 남자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어보자. 요즘은 성을 알만한 나이 또래의 청소년 자위는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것쯤은 상식이 되었다. 이미 시작된 자위를 막을 수 없다면 자위 횟수가 지나치지 않도록 조언하는 정도면 된다. 또 어차피 할 자위라면 느긋하게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낫다. 건강한 성반응은 긴장보다는 느긋한 안정감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죄책감에 들킬까 봐 두려워 너무 서둘러 사정에만 몰입하는 자위는 사정중추에 급박한 사정습관을 고착화시킬 수 있어서 조루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조루가 될 수 있으니 어릴 때부터 사정직전에 좀 참아보라는 식의 조언으로 오버하는 어설픈 현대식 아버지도 있다. 아이가 사정 조절력을 갖도록 하겠다며 딴 생각을 하며 버텨보라는 식으로 조언하는 것은 앞서 언급했듯 올바른 교육 방식이 아니다. 주변에 아직도 성행위 시간을 벌겠다며 구구단을 외고, 애국가를 부르고, 흥분을 피하겠다고 나쁜 기억을 떠올리고, 그 소중한 감각을 마비시키겠다는 남성이 있다면 부디 말리길 바란다. 조루의 올바른 치료란 무서운(?) 자극으로부터 도망가는 게 아니다. 소중한 자극에 적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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