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에서 도요타 차량의 리콜 사태는 도요타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도요타의 글로벌 시장 리콜 대수는 중동과 남미, 아프리카 등으로 확대되며 현재8백만 대를 돌파한 것으로 추산됐다.

"지금 우리는 렉서스를 타고 있는데 액셀러레이터가 꼼짝도 안한다! 지금 우리는 고속도로에 있고 속도는 120마일인데 브레이크가 전혀 듣지 않아! 지금 바로 앞에 고속도로가 끝나가는데…오 하느님…"(뚝) 지난해 8월28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의 911 통화기록이다. 이 차량은 전화신고 직후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일가족 4명이 몰살했다. 최근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의 시발점이다. 그동안 미국이나 한국에서도 자동차의 급발진 사고는 왕왕 있었지만, 자동차 업체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운전자 부주의다", "조작 미숙이다"며 발뺌하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사고 당시 상황이 911 전화로 생중계됐기 때문이다. 당황한 운전자가 "오 하느님"을 외치는 충격적 통화내용은 곧 미 전역 뉴스와 인터넷을 타고 도요타를 강타했다. 이 문제의 사고는 작년 8월에 일어났지만 본격 리콜에 들어가기까지는 반년이 걸렸다. 당시 도요타는 사고 2개월이 지나서야 “매트가 액셀에 끼여서 벌어진 문제이기 때문에 매트만 교환하면 문제없다"고 했다가, 3개월 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 측에서 "설계 결함일 수 있다"고 발표하자 비로소 항복하고 리콜을 발표했다. 6개월간 계속 도요타의 말바꾸기 과정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의 배신감은 너무 컸다.

이 배신감 때문인지 전세계의 도요타 리콜 사태는 좀처럼 진정되질 않는다. 때리고 받아들이는 자세도 다양하다. 미국 언론의 도요타 때리기, 미국 정부의 도요타 죽이고 미국차 브랜드 살리기 등 갖가지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나 도요타에 대해 한마디씩 하고 싶었는지 이나바 요시미 사장이 머리를 숙이는 각도까지 거론되고 있다. 다른 식품회사 사장들이 머리 숙여 사과했던 그 각도보다 요시미 사장은 조금 숙였다는 내용이다. 잘못을 덜 인정하는 것이 아니냐 라는 여론까지 들끓고 있다. 급기야 청문회까지 나가게 됐다. 하물며 일본 언론에서도 도요타에 대한 질책을 매섭게 했다. 대량 리콜 사태에 직면한 도요타 자동차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던 일본 정부와 언론이 마침내 매를 든 것이다.

도요타 간판 차종인 신형 프리우스의 브레이크 결함과 은폐 의혹, 땜질식 처방이 이어진 지난주 후반부터다. 도요타가 이미 작년 가을에 브레이크 결함을 파악했으면서도 처음엔 진정이 접수된 차량만 고쳐주겠다고 했다가 여론이 험악해지자 최근 리콜하기로 한 것은 때늦은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마냥 자신들의 대표 브랜드를 질타만 할 리 없다. 오히려 미국에 대한 반발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미국의 지나친 ‘일본 때리기(Japan-bashing)’이며 거기에는 뻔한 의도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일부 일본인은 도요타에 대한 극렬한 비난에 미국의 정치세력이 적극적으로 개입돼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한다.

미국 정부가 파산 위기에 있던 제너럴모터스 회생에 나서며 GM의 지분 60.8%를 보유한 최대주주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요타가 2008년 GM을 제치고 판매 대수에서 세계 1위를 차지한 것도 음모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음모론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명백하게 사실들이 너무 많다. 미국인들이 도요타를 빠르게 외면하는 이유는 그동안 도요타에 대한 신뢰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미국인 10명 중 1.7명이 도요타 브랜드를 탄다고 한다. 도요타의 고객은 BMW나 벤츠처럼 자동차 마니아가 아니라, 주부나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자동차는 개성이나 취미가 아니라 매일하는 출퇴근, 가끔가는 쇼핑에 이용하는 생활수단이다. 그래서 자연히 고장 안 나고 튼튼한 일제자동차를 선호했었다. 그런데 이번 사고로 고객들이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렸다. 가장 일상적인 물건이 가장 위험한 무기로 변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번 도요타 리콜 사태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났다. 무너지는 아성 속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선적으로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은 지엠과 현대 기아차이다. 사실 도요타는 현대자동차의 롤모델이었다. 일본 자동차들이 그간 한국 자동차 업계의 스승 노릇 해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일본자동차 그 중 특히 도요타는 현대가 후발 주자로 벤치마킹 해 온 기업이기도 하다.

과도한 시장확장과 원가절감 그리고 치명적 결함의 은폐와 축소가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 이번의 도요타의 리콜 사태가 닮은꼴인 현대에게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 브랜드 자동차가 그동안 도요타의 빛나던 길을 쫓아왔다면, 지금은 온고지신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일반인들에게 외면 당하지 않을 방법 또한 이번 사태로 인해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도요타의 리콜 사태가 주는 진짜 교훈은 소비자와 여론이 완전히 등을 돌렸을 경우 어떤 기업이라도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큰 기업이고, 잘나가는 업체라고 해도 소비자와 여론이 등을 돌린다면 주저 앉을 수 밖에 없다.

<김현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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