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인사말은 “샬롬”입니다. “평안이 있을지어다”라는 축복의 말입니다. 한국인의 인사말은 “안녕하세요”입니다. 안녕이란 단어는 편안할 안(安)과 평안할 녕(寧)이란 한자에서 유래되었으며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편안한지 물어보는 질문입니다.  “샬롬”이나 “안녕하세요”의 인사말은 유대인이나 한국인이나 “편안함”과 “평안함”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말입니다.
예수님도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라고 축복하시면서 제자들이 진정 추구해야할 것은 평안함이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돈을 열심히 버는 것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직장에서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알고 보면 성공을 해야 평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어도 공부를 잘해도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도 마음은 늘 무언가에 쫓기는 것 같고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 때문에 불안 속에서 더 많이 소유하고 성취하기 위해 애쓰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 얼마큼 돈을 벌어야, 그 평안함을 얻을 수 있게될까’라는 질문을 하게됩니다.
예수님은 “평안함”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세상이 줄 수 있는 “편안함”을 “평안함”으로 착각하며 살기에 몸은 편안할 수 있지만 마음은 평안하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면 평안함은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내가 얼마나 많은 것에서 자유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은 불편한 길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매를 맞고 조롱을 다하고, 무시를 당하는 속에서 약한 자의 모습으로, 인생의 실패자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걸아가야 하는 길은 예수님이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편안하지 않은 길이었지만 평안한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다 이루었다”라는 고백을 통해 그의 삶의 목적이 아름답게 이루어졌기에 그 마음에 큰 평안이 있으심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현대 교회에 편안한 교인들은 많은데 평안한 제자들은 찾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교회를 다닌다고 하지만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는 예수님의 명령이 부담이 되어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열심히 해야할 일을 하지만 혹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순종을 해야할 상황이 되면 여러가지 핑계를 대며 피하거나 거부합니다.
예수님의 친구였던 나사로가 죽었을 때 돌 무덤 앞에서 슬피 우시던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명령합니다. “무덤의 돌을 옮겨라.” 이미 죽은 나사로의 시체를 무엇 때문에 보시려고 하나는 생각으로 마르다는 대답합니다. “주여, 죽은지 나흘이나 되어서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다에게 무덤의 돌을 옮기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정작 나사로를 살릴 수 있는 돌을 옮기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놓으라 하셨을까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죽은 나사로를 “나사로야 무덤에서 나오라”는 한 말씀으로 살리셨다면 무덤의 돌도 말씀으로 옮기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돌을 옮기는 게 더 쉬웠을텐데 굳이 마르다가 돌을 옮기기 원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하실 일이고 돌을 옮기는 것은 마르다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편안하지 않은 일이라  해도 그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라고 생각하고 순종할 때 진정한 평안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한 것은 돌을 옮겨놓는 것은 우리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안함이 내 삶에 있기를 소망하십니까? 그렇다면 내 삶의 돌을 옮겨 놓으십시오. 예수님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내가 도울 수 있는 노숙자들은 애써 외면하고 있다면 그것이 내가 옮겨야 할 돌입니다.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면서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면 그것이 내가 옮겨야 할 돌입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갖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내가 오늘 겪고 있는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간구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이 내가 옮겨야 할 돌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신앙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나의 말과 행동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옮겨야할 돌입니다. 
내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이렇게 불편하지만 내가 하기를 원하시는 작은 일들을 예수님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과 같은 기적이 필요한 일은 예수님께 맡기시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돌을 옮겨놓는 일을 시작하십시오. 편안함이 아니라 평안함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시고 더 이상 핑계대지 마시고, 더 이상 피하지 마시고, 더 이상 거부하지 마시고, 그 불편할 수 있는 일을 오늘 하십시오.  세상이 알수도 없는, 세상이 이해할 수도 없는 평안함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샬롬!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