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한국에서는 <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3·1운동 애국자 피살 명부> 등 일본의 만행이 적나라하게 적혀진 총 67권의 명부가 공개됐다. 모두 1952년 12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전국 조사를 통해 작성한 기록물로 하나같이 역사적 가치가 큰 자료들이다.
당장 3·1운동에 대한 일제의 탄압 역사부터 새로 써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동안 3·1운동으로 희생된 순국자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어 391명에 대해서만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왔다. 이번에 발견된 <3·1운동 애국자 피살 명부>에는 희생자 630명의 이름과 나이, 주소, 숨진 일시와 장소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는 만큼 이것만으로도 순국자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이 명부에는 유관순 열사가 타살된 증거도 뚜렷하게 적혀져 있다. 피살자 명부에 유관순 열사의 순국 당시 주소는 천안군 동면 용두리, 순국 장소는 서대문형무소이고, 이름 아래로 내려가보면 타살(打殺)이라고 쓰여 있다. 자세히 보면 ‘3·1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돼 옥중에서 타살 당함’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유 열사 부친인 유중권 열사는 3·1 독립운동으로 인하여 총살, 어머니는 현장에서 순국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다. 간토대지진은 90년 전인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의 대지진이 도쿄 등 일본 간토지방을 강타해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혼란과 민심 불안이 심각해지자 일본 군경과 자경단이‘조선인과 사회주의자들이 폭동을 일으켰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고, 간토 일원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이 학살됐다. 당시 임시정부가 조사한 희생자가 6661명이었다. 그러나 1924년 3월에 작성된 독일 외무부 자료에는 2만3058명으로 나오는 등 그 수는 추정치일 뿐이다. 하지만 희생자 명단과 구체적인 피살 상황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자료가 나옴으로써 진상규명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어쨌든 유대인 학살에 버금하는 ‘대학살’이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피해자 22만9781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등이 65권에 걸쳐 수록돼 있는 피징용자 명부다. 이것은 우리가 유일한 정부 차원의 조사기록으로 알고 있던 1957년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보다 최소 4년 이상 앞서 작성된 현존하는 최고의 자료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보상 문제에 중요한 근거자료로 쓰일 수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중요한 기록물이 이제서야 발견된 것일까. 이 기록물들은 지난 6월 도쿄 주일 한국대사관의 이전과정 중 대사관 옛 서고에서 발견되어 몇 달간의 검증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정부의 기록관리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하길래 그런 중요기록물이 재외 공관의 어느 구석진 곳에서 60년 동안이나 방치돼 있을 수 있었던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정부의 공식 조사자료임에도 이를 활용하기는 커녕 그런 게 있는지조차 까맣게 몰랐다니, 한심스럽다. 혹시 자료의 존재를 알면서도 일본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쉬쉬했던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한국 정부는 이 대목에 대해서도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게 명쾌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의 만행과 관련된 정부 공식기록물이 드러났다. 이렇게 당하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국을 보면서, 어쩌면 아베 총리가 말한 것처럼 ‘한국은 어리석은 나라’라는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베 총리가 왜 이런 발언했을까 라면서 아베의 속마음을 이곳 저곳에서 우리 마음대로 분석한다고 난리인 것을 보면서 참 한심스럽기도 하다. 우리의 처신을 언제까지 일본의 눈치를 보면서 결정해야 한단 말인가.

    저 기고만장한 일본은 바로 한국이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가 어둠의 역사를 숨기기 위해 교과서에서 사실 자체를 삭제해버린 경우도 있지만 한국 정부 역시 일본에 항의한 적이 없을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학살 상황을 담은 증언집들이 지난 8월에 일본의 한 시민단체에 의해 발간되기도 했다. 한국의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소극적인 대응법 덕분에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은 아주 심각한 상태이고, 일부 세계지도에서 독도는 버젓이 일본땅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사과와 반성, 피해자 손해배상을 하지 않으면 한국과 전향적인 미래 관계를 열어가기 어렵다는 게 이번 자료 공개로 또 한번 분명해졌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유럽처럼 한중일 공동역사서 편찬을 제의했다. 하지만 이건 실현 불가능한 꿈이 분명하다. 한일 양국에서 새 정권이 출범했는데도 정상회담조차 열리지 못하는 비정상적 한일 관계를 보면 더욱 절실히 깨닫는다.
독일은 아직까지도 총리가 과거사 문제로 사과한다. 독일과 프랑스, 독일과 폴란드의 공동 역사 교과서가 각각 73년, 30년의 논의 끝에 만들어졌다. 이는 독일의 철저한 과거사 반성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일본은 일제강점기 이후 68년째 반성은 커녕 망언만 쏟아내고 있다. 이번 기록물로 인해 일제 침략의 과거사와 피해사례가 더욱 명명백백해졌다. 일본에 사는 우리 국민들과 진출한 우리 기업들을 생각하면 어떻게든 현상유지를 해야겠지만, 우리 후세를 위해서라도 결코 여기서 물러서면 안 된다. 지금처럼 일본에 끌려 다니는식의 대응만 한다면 한국은 정말 아베가 원하는 어리석은 나라가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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