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을 통해 부와 명성을 과시하다

     세상의 중심에는 내가 있다.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부와 명성 그리고 권력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에서 확고하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리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한다. 미술 역사상 처음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알리기 위해 자화상을 제작한 화가는 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다. 뒤러는 자신의 흔적을 자화상 형식을 빌려서 표현했는데, 이는 자신을 선전하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뒤러는 열네 살 때 최초로 독자적인 스타일의 자화상을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이전의 화가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돋보이게 보이기 위해 화려하고 우아한 남자로 묘사했다. 그 당시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 누구도 자화상을 통해 부와 명성을 과시한 사람은 없었다. 자의식이 강한 뒤러는 신분이 낮은 수공업자가 아니라 학자로서 동등한 대우를 원했기 때문이다.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에서 뒤러는 모피를 덧댄 갈색의 코트를 입은 정면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했다. 화면 정면에 얼굴을 배치하면서 뒤러는 가리마 부분의 머리를 제외하면 좌우 대칭으로 얼굴을 그렸다. 길고 어두운 고수머리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있어 얼굴과 정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뒤러의 오른손은 모피 코트의 칼라를 잡고 있다. 오른손도 화면 좌우 중앙 부분에 놓여 있다. 뒤러는 머리카락의 세세한 부분, 모피코트의 모피털, 손등의 힘줄까지 세밀하게 그려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정교하게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이 자화상에서 뒤러는 그때까지 내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화법을 이용했다. 6세기부터 시작한 그리스도 초상화법이란 그리스도의 얼굴을 좌우 대칭으로 완벽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말한다. 또 뒤러의 짧게 자른 턱수염도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뒤러가 이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은 신을 닮은 인간은 화가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최초의 창시자라면 화가의 창조력은 신의 능력과 비슷하다는 믿음에서 나왔다. 뒤러의 이러한 생각은 이탈리아에서 경험한 새로운 인문주의적 자의식이 바탕이 되었고 그것을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에서 뒤러는 모피를 통해 자신의 부유함을 나타냈으며 잘 다듬어진 헤어스타일과 수염은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뒤러는 당시 성공한 화가로서 수입이 굉장히 많았다. 모피 같은 화려한 의상을 구입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기에 자신을 부유한 귀족으로 묘사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릴 만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화면 왼쪽 어두운 배경에 1500년이라는 제작년도와 알브레히트 뒤러의 이니셜 AD을 써놓았다. 또 오른쪽 배경에는 라틴어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남겼다.
“나, 뉘른베르크 출신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의 나이에 불변의 색채로 나 자신을 이렇게 그렸다.”
뒤러는 이 자화상에 그림과 함께 글을 써놓아 자신의 모습이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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