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한 날씨에 따뜻한 커피나 차를 많이 찾는 요즘, 쓰던 컵을 전부 유리나 도자기 제품으로 바꾸도록 했다. 그 때문에 직원들은 불편하다며 하소연한다. 하지만 필자가 그렇게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의 삶에 너무 깊이 침투한 플라스틱, 바로 그 원료물질 중 하나인 비스페놀A(BPA)가 인체에 유해한 환경호르몬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제학계가 BPA의 위험성을 강력히 경고해 왔음에도 각국의 산업계와 정부기관은 이를 다소 등한시해 왔다. 하지만 연구 결과 유해성이 명백해지자 몇 년 전부터 미국·캐나다 등 서구사회는 정부 차원의 규제에 나섰다.
여러 연구에서 BPA는 호르몬 유사작용으로 내분비계를 교란시켜 불임이나 당뇨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이러한 연구 결과는 주로 동물실험에 따른 것이라 인간에게는 유해성이 다를 수 있다는 업계의 반론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인체 유해성이 직접 드러난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적색경보가 울렸다.
‘휴먼 리프로덕션(Human reproduction)’이라는 학술지에 최근 발표된 연구를 보면 고농도 BPA에 노출된 공장 근로자와 그렇지 않은 근로자 등 남성 634명의 성기능을 비교했더니, 노출군에서 발기부전이 무려 4.5배, 사정장애가 7.1배 높았다. 성욕 감소 및 성생활 만족도의 저하도 4배나 심했다. 성기능장애는 일에 종사한 지 1년 내에 시작되었고, BPA에 많이 노출될수록 발병률도 높았다.
물론 일반인이 플라스틱 공장 근로자만큼 BPA에 노출될 가능성은 작다. 하지만 6세 이상 미국인 93%의 소변에서 BPA가 검출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구나 저농도면 인체에 무해하다는 증거도 없고, 저농도라도 계속 노출되면 장기적인 위험성은 있으며, 극소량에서도 암을 유발하거나 내분비계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 현시점에서 어떻게 위험성을 줄여야 할까. 우선 플라스틱을 써야 한다면 BPA를 원료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쓰는 게 좀 낫다. 또한 플라스틱에 열을 가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때 BPA가 포함된 젖병이 논란이 된 적도 있는데, 뜨거운 우유를 넣어두거나 젖병을 열로 장시간 소독하면 BPA가 더욱 방출되어 방어력이 취약한 아이들에게 성적 조숙증이나 내분비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BPA가 포함된 플라스틱 용기에 뜨거운 음료나 음식을 담아 먹거나 전자레인지로 가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오래 쓰거나 수세미로 씻어서 표면이 긁힌 용기는 BPA를 더욱 많이 방출한다. 겨울철 뜨거운 캔음료도 내부가 플라스틱으로 코팅되어 위험 소지가 있다. 찌그러져 내부 코팅막이 훼손된 경우는 더 위험하다. 이외에도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일회용 음식들은 가급적 다른 용기에 옮겨 담아 데우는 게 낫고, 직접 전자레인지에 가열하지 않도록 한다.
일상에 너무 쉽게 접하는 플라스틱까지 신경 쓴다면 지나친 기우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소하다며 섣불리 무시하면 가랑비에 옷 젖기 마련이다. 가벼운 주의가 아이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어른의 성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 쌀쌀한 날씨에 뜨거운 음료를 플라스틱 컵에 담으면 독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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