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부는 넓고 큰 대궐 같은 집에서 마누라와 단 둘이서 살았다. 흥부는 한 핏줄인 놀부에게 쫓겨나 열명이 넘는 자식들과 함께 작은 초가집에서 복작복작하게 살았다. 놀부는 자신이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언제나 흥부를 시기 질투하면서, 흥부네 가족의 조촐한 밥상, 흥부네 가족의 가난한 부엌 세간 살이 까지도 뺏고 싶어 눈에 불을 켰다. 물론 남몰래 말이다. 그리고 마음씨 착한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서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놀부는 재물 욕심에 멀쩡한 제비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려 약을 발라 주었다. 제비 다리에 약을 발라주는 놀부의 행동은 사람들에게 일부러 보여주고 제비에게 생색을 내려는 가증스러운 요식 행위요, ‘착한 척’ 이라는 것쯤은 사람이 아닌 제비도 알아차린 사실이다.

지난주 콜로라도주 한인 노인회에서는 설날잔치 겸 회장 취임식이 있었다. 많은 동포들이 모였다. 기념일 때마다 으레 노인회관을 찾을 정도로 이제는 무슨 날이 되면 노인회에서 행사를 하는 것을 당연시 여긴다. 하지만 노인회관을 갈 때마다 마음이 참 불편하다. 많은 식구들이 복작복작하게 모여 즐겁게 살고 있지만, 좁은 장소 때문에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행사가 있을 때뿐만이 아니다. 매일 고정적으로 30여명이 노인회관을 방문하고, 매주 토요일 점심때는 50명은 족히 모인다. 이렇게 생활한지도 벌써 2년이 다 되어 간다. 어느 단체보다도 자체 행사를 많이 하는 곳이 노인회다. 한인사회에 일이 있을 때마다 참석해 한인사회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정립해 나간 지도 오래됐다. 재미대한 노인회 콜로라도 지부로서 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국방문 행사도 매년 시행해 각광을 받고 있고, 가을이 되면 야유회를 개최해 외로운 이민 생활의 설움을 달래주고, 설날이 되면 떡국잔치로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해준다. 삼일절과 광복절 같은 한국의 기념일 행사를 하는 것 또한 그 기념일의 의미를 아는 우리 1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2세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기에 의미 있다. 한인사회 경조사에도 일일이 다니면서 함께 기뻐해주고, 슬픔은 함께 나누면서 한인사회에 버팀목 같은 존재로 자리를 굳혔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 때문인지 노인회의 회원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가족이 늘면서 넓은 집이 필요해졌다.

이러한 생각은 회원들만의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지난주 회장 취임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관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을 표했다. 그 동안 노인회는 셋방살이하던 한인회관이 매각되면서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고생했다. 그리고 현재의 노인회관을 구입하고 비로소 독립적인 노인회관이 생겼지만 주택 거주용도에다 집이 좁아 늘어난 회원들, 행사 때마다 방문하는 지역인사들이 모두 입실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알기에 취임식에 참석한 한 단체장은 콜로라도에 사는 한인 동포로서 새로운 노인회관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동포사회에는 이미 놀부 집 같이 넓고 좋은 노우회관이 있다. 지난해인가 ‘버려진 노우회관’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썼다가 노우회로부터 험한 소리를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우회관에 대해 지금 다시 언급하는 이유는 동포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노우회관은 단독건물로 2백여 명은 족히 입실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돌보지 않는다. 집행부도 없이 회장 한 명이 노우회관을 지킨 지 오래다. 정작 노인들을 위해서는 한 달에 이틀만 여는 노우회관이라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것이 낫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노우회는 한동안 이런 여론에 눈감고, 귀를 막고 지냈다. 노우회관 이용에 대해 물어보면 “이곳 저곳 손볼 곳이 많아서 지금은 사람들이 이용하기 힘들다. 보일러가 돌아가지 않아 추워서 이용하기 힘들다”는 얘기를 한다. 즉 보수를 하기 위해서는 동포사회의 후원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회관이 이 정도가 될 때까지 관리도 않고 도대체 무엇을 했단 말인가. 관리도 못하는 회관을 도대체, 왜 끼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저렇게 망가뜨린 것에 대해 먼저 부끄럽게 생각해야 당연하다. 동포사회에서 꼭 필요한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자신의 개인 소유물처럼 다루고 있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되질 않는다.

노우회측은 회관을 말로만 동포사회에 개방했다고 했지만 정작 사용한 단체는 거의 없었다. 노우회측도 지금은 노우회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서 오는 6월에 총무를 선출하고, 55세가 넘어서 은퇴하는 사람들이 노우회를 찾으면 회관을 넘겨줄 생각이라고 한다. 풀어 말하면 현 회장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회관 문 잠궈 놓고 있겠다는 얘기다.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탓에 그래도 눈치가 보였는지 얼마 전부터 르완다 난민 몇 명을 선교하는 조그만 교회에 렌트를 놓았다. 그들이 전기세 정도를 부담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명목은 좋다. 하지만 왜 계속 놀부가 제비에게 ‘착한 척’하며 발라준 약이 생각 나는지 모르겠다. 노우회관은 애초 한인사회 노인들을 위한 공간, 일종의 공공기관의 모양새로 오로라 시와 동포들로부터 후원을 받았었다. 그렇다면 이는 당연히 개인 재산처럼 사용되어서는 안될 공공건물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내용을 따지기 전에 노우회관은 엄연히 한인 노인들을 위한 공간이고, 그렇다면 노인들을 위해 쓰여지는 것이 당연하다. 몇몇 개인의 욕심과 오기로 한인사회의 큰 재산인 한인회관을 팔아먹은 것도 부족해 이제는 노우회관까지 망가지고 있는 것을 두고 봐야 한단 말인가. 전미주 한인사회를 통틀어 한인회관이 있는 곳도 몇 되지 않는다. 이런 중요한 한인회관이 없어졌을 때도 서로 눈치만 보며 가만히 있었다. 덴버 한인사회 역사의 틀림없는 수치다. 노우회관도 마찬가지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단독 건물을 가지고 있는 노인회는 거의 없다. 이렇게 귀한 회관을 우리가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인회관 같은 답습을 또다시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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