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인 샘 레븐슨은 미국 이민을 꿈꾸던 자신의 부모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희 부모님은 이민자 출신입니다. 미국에 오기 전에는 여기에 있는 도로가 모두 금으로 포장되었다는 이야기도 믿으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미국에 도착하고 나서 아버지는 세 가지를 깨달으셨다고 합니다. 첫째, 도로가 금으로 포장되어 있지 않다. 둘째, 도로가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다. 셋째, 내가 도로를 포장해야 한다.” 레븐슨의 부모는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현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현실을 직면하고 나서도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표를 끊지 않았다. 대신 앞을 보고 달리고, 일자리를 얻고, 삶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 미국에 온 우리 이민 1세대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언어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몇 달을 버틸 여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미국은 일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정부가 먹여 살리는 그런 천국과도 같은 땅이 아니었다. 현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아무리 허드렛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했다. 모든 도로들이 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던 것은 고사하고 포장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 포장을 직접 깔면서 이 미국에서 버텨냈다. 그 결과 어떤 비바람에도 그 어떤 민족보다도 잘 견뎌낼 수 있는 강인한 이민자들이 된 것이다.
똑 같은 상황 앞에서 ‘난 할 수 없어’와 ‘난 할 수 있어’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모든 도로는 금으로 되어 있지 않다. 사실 포장조차도 되어 있지 않은 험한 길이다. 그 현실에 직면하면서 ‘난 할 수 없어’라고 포기할 수도 있다.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난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단 한 가지 차이가 있다. 포장조차도 되어 있지 않은 도로를 내가 포장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오히려 그 장애를 뚫고 일어서서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2014년 새해의 삶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 어떤 현실이 주어질지 모른다. 우리가 서 있는 삶의 기반이 그렇게 단단한 것도 아니다. 현실의 무게는 점점 우리에게 가중되어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현실을 바라볼 것인가는 우리가 결정할 수 있다. 현실은 우리가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현실을 대처하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정할 수 있다. ‘난 할 수 없어’와 ‘난 할 수 있어’는 누구도 결정해 줄 수 없다. 우리 스스로가 정해서 가질 수 있는 마음이다.
‘난 할 수 없다’는 마음에 가장 많이 속삭이는 것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는 소리이다.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우리가 최초가 될 기회가 생긴 것이기도 하다. 결국 포장되어 있지 않은 도로를 우리가 최초로 포장할 기회가 온 것이다. 이것이 ‘난 할 수 있어’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난 가진 게 없어’도 할 수 없다고 결정하는 순간 다가오는 생각이다.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우리의 숨겨진 창조력을 자극하게 된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넉넉한 데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방이 막혀 있을 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나온다. 하늘을 보는 것이다. 하늘은 언제나 열려있기 때문이다. 학원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징역을 선고 받은 황대권이라는 사람이 있다. 다행히 국가기관에 의한 조작 사건으로 결말이 나서 출소하게 되었다. 하지만 30살에서 43살이 될 때까지 13년 2개월 동안 황금 같은 청춘을 감옥에 보냈다. 짓지도 않은 죄값을 치르기 위해서 죽을 때까지 감옥에 있어야 된다고 했을 때 그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 분노로 치를 떨었다. 더 이상 살 이유도, 의욕도 없었다. 그런 상태로 몇 년간 더 갔다면 그는 감옥에서 패인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체조를 하러 나갔다가 담 밑에 자라나는 야생초를 보게 된다. 누가 씨를 뿌린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물을 주고 가꾸지도 않았는데 얼마나 아름답게 피었는지 모른다. 그때부터 야생초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밖에 나갈 기회만 생기면 야생초 씨앗을 받아 왔다. 감옥 소장에게 텃밭을 하나 가꾸게 해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는 수천 가지 야생초를 가꾸었다. 이름도 모를 야생초에 지극 정성을 들였다. 야생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야생초 연구에 몰두하면서 13년이라는 세월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그의 죄목은 벗겨졌고 출소하기에 이른다. 그 사이에는 그는 한국에서 탁월한 야생초 전문가가 되었다. 그가 쓴 책들은 야생초 연구에 큰 지평을 이루고 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결코 포기할 이유는 아닌 것이다. 오히려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도 ‘난 할 수 없어’라고 마음의 결정을 할 때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난 할 수 있어’가 되면 ‘일하는 것을 바꿀 것이다’로 바뀌게 된다. 일하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 시간을 줄이면서도 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나에게는 올해의 목표 중에 성경을 6독하는 것이 있다. 두 달에 전체 66권을 읽어야 6독이 가능하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다른 책을 읽는 것도 목표를 100권으로 잡았기 때문이다. 시간을 줄이면서 성경을 읽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듣는 성경이다. 운동을 하면서 음악을 듣기보다 성경을 듣기로 했다. 그것도 MP3로 피트니스장에서 듣는 것과 셀폰을 통해서 듣는 것 두 가지 종류를 만들었다. 이렇게 두 번 성경 전체를 듣게 되면 올해 6독을 하는 목표를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을 찾기 않기 때문에 못하는 것이다.
‘이미 시도해 봤다’도 ‘난 할 수 없어’라는 것을 마음에 두기로 결정하는 순간에 떠오르는 것이다. 과거에 해보았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다시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갖게 한다. 이런 생각은 나도 못할 뿐 아니라 이제 하겠다고 열심을 품는 사람까지도 주저 않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이런 상황을 전혀 다른 해석을 한다. 이미 시도해 보았기 때문에 비록 실패했을 지라도 그 경험에서 많은 배움을 얻게 되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 것은 엄청난 성과이다. 이번에 하면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건 내일이 아니다’는 ‘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할 때 언제나 핑계거리가 되는 말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기쁨은 내가 책임지는 일에서 온다. ‘난 할 수 있어’라고 결정한 사람은 책임지는 일을 회피하지 않는다. 기쁨이 어디서 오는 지를 잘 알기 때문이다. 휴가의 기쁨은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축복이다. 은퇴의 행복 역시 평생 쉬지 않고 달려온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선물이다. 올해 말 우리가 받을 보상은 1년 동안 얼마나 책임질 일을 많이 했느냐에 달려 있다. 가족을 책임지고 자녀들을 책임지는 것은 너무 기본 적인 것이다. 일터를 책임지는 것도 우리가 누릴 기쁨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 외에 교회를 책임지고 이웃을 섬기는 것을 책임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고 섬겼느냐가 우리의 기쁨을 좌우할 것이다. 올해는 ‘난 할 수 없다’보다 ‘난 할 수 있어’라는 마음의 결정을 하고 힘차게 달려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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