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래 봬도 우리는 뼈대 있는 집안이다’, ‘이 묘는 조선시대 고위관료였던 조상님의 것이다’, ‘아들아, 대통령이 되어라, 그래도 나라의 녹을 먹는 것이 좋다’. 누구나 어릴 적에 이런 말을 집안 어른들께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모두 출세와 관련된 말이다. 뭐라도 한자리 해야만 된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출세욕이 나쁜 걸까.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이 출세욕이야 말로 한국을 만든 원동력이었고, 지금의 한인사회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출세욕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정치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정계에 진출하면 출세를 한 것이라 생각해 장원급제를 하기 바랬고, 반대세력은 과감히 제거하기도 했다. 이런 한국 사회의 성향은 이민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정계에 이름 한자 올리고 싶어하는 사람들과 이민사회에서 단체장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감투라도 한 가지 가지고 있어야 커피 한 잔이라도 얻어 마시고,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준다는 생각부터 비슷하다. 하지만 이런 속물적인 생각보다는 단체장이 되어 진심으로 한인사회에 기여하겠다는 회장들도 있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끔 단체장이 되기 위해 혈안이 된 사람들을 보면 그 열정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 열정만큼이나 한인사회를 바꾸고 싶고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공인임을 망각하고 단체장의 자리가 한낱 개인의 욕심을 채우는 자리로 전락되면 문제가 된다. 때가 되면 공개적으로 한인 회장을 선출한다는 공고가  나가기는 하지만, 암암리에 기존의 한인회를 차지하고 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담합해 측근의 인물을 천거, 한인회장으로 선출시켜 온 것은 이제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오랜 관례가 되어 버렸다. 회장할 사람이 없다고 연임하는 것 역시 의례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미주 한인사회에서 한인회 다음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가 바로 재미 대한 체육회이지만 콜로라도에서는 이름만 있는 유명무실 단체로 의미를 상실한지 오래다. 요즘 지구촌 핫 뉴스의 대부분을 소치올림픽이 장식하고 있고, 각 국가마다 단결해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스포츠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심적 단체의 유명무실 탓에 우리 덴버 한인사회에서 스포츠의 역할은 거의 제로이다.
 4년전쯤인가, 20년 만에 새 회장이 선출되어 새로운 체육회의 출범에 희망을 품었지만 정상적인 절차로 새 회장을 뽑았음에도 불구하고 별 다른 이유 없이 결과를 번복해, 기존의 회장이 그 자리를 절대로 내 놓을 수 없다고 버티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져 오늘까지 그러고 있다. 장수 회장으로 치자면 상공인회도 마찬가지다. 한인회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상공인회는 최근 10년 동안 이름조차 쉽사리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쇄락했다. 노우회는 어떤가. 회장이 있든 없든 역할을 한지 오래다.
이제 더 이상 콜로라도 젊은 세대들을 케케묵은 회칙으로 묶어두고 어른 공경 따위나 따지면서 대외적으로 망신 당하는 협회는 사라질 때가 됐다.

     최근 서너개의 한인단체들이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라 한인사회의 발전을 위해 진정 뛰고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어 그나마 다행스럽다. 11월 선거를 앞두고 콜로라도 주류사회는 현재 한인사회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이크 코프만과 앤드류 로만노프가 연방하원 자리를 두고 경쟁구도를 벌이고 있는 연방 6지구에 거주하는 한인 유권자의 수는 약 5천명이다. 5천 유권자들에 의해 이들의 당락이 결정될 수도 있다.  그래서 콜로라도의 유일 일간지인 덴버 포스트지에서 이를 기사화하기 위해 한인사회의 인사들과의 인터뷰까지 시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덴버 포스트지는 한인사회를 대표할 만한 인물과의 인터뷰를 원했다. 우린 몇 명의 인사들을 천거했지만 늘 찜찜한 부분이 바로 2개의 한인회다. 한인사회 분열 상황을 대외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하지 않다. 이번 총영사 만찬 또한 한인회 주관이 될 수 없었던 것도 한인회가 2개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현재 한인사회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인회의 통합이다.  분열된 지 7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에는 합의점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고만 여겼다. 하지만 이제 두 한인회 또한 스스로 통합되지 않으면 대외적 활동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개인적 욕심을 채우기 위한 한인회가 아니라면 올해는 통합의 기틀이라도 마련해 진정 한인사회의 공익을 위한 한인회임을 입증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한인회 뿐만이 아니다. 어느 단체든 그것이 사적이든, 종교적이든 상관없이 모임의 수장인 ‘회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공인이며, 그 자리에 서있는 자신의 격을 다시 한번 성찰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잘못을 내탓으로 반성하고, 주변을 돌아보는 최소한의 마음가짐조차 없다면 그 ‘회장’은 자격이 없다. 단지 개인욕심에 눈먼 한낱 이기적인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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