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개봉된 영화 ‘로마의 휴일’은 여배우 오드리 헵번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 올려놓았던 명작이다. 엄격하고 빠듯한 왕실의 일정에 지친 앤 공주는 로마 방문 중 관저를 몰래 빠져나와 24시간의 자유를 만끽한다. 그녀는 별 볼일 없던 기자 브래들리(그레고리 펙 분)와 우연히 만나 짧은 데이트를 즐기게 되는데….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자 관광명소인 ‘진실의 입’ 석상은 바다의 신 트리톤의 얼굴이 새겨진 커다란 대리석 원반이다. ‘거짓말쟁이가 손을 넣으면 먹어버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영화에서 브래들리는 ‘진실의 입’에 손을 불쑥 집어넣고선 마치 손이 잘린 듯한 시늉으로 앤 공주를 놀라게 한다.
부부의 성문제에서도 ‘진실의 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해도 애초에 서로 다른 남녀가 만났는데, 처음부터 궁합이 척척 맞을 순 없다. 궁합은 처음부터 정해진 게 아니라 서로 맞춰가다 보면 첫 느낌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좋아지거나 나빠질 수도 있다. 그런데 상당수의 부부가 성행위 직후 나누는 대화는 아래와 같은 경우가 허다하다.
남편: (오늘도 만족했길 바라면서) “좋았어? 느꼈어?”
아내: (속으로 아쉬워하면서도) “응…, 그래, 좋았어.”
과연 표현 그대로일까? 많은 부부가 그때그때의 성적 만족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특히 이런 현상은 성적 극치감인 오르가슴 문제에서 두드러진다. 남성이야 성적 극치감이 사정이라는 신체현상으로 표출되니 뚜렷하지만, 여성은 그렇지 못하며, 매번 오르가슴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여성에겐 성행위 중의 리듬감과 만족도가 더 중요한데도 남성들은 오로지 아내가 오르가슴을 느꼈는지에만 몰두한다. 그날 느끼지 못했다면 아내는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것이고, 그 성행위는 무조건 실패라 여기는 것은 남성의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여성도 그저 남편이 실망할까봐 진실을 숨기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면에서 부부의 성생활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적절한 수준의 솔직한 피드백이다. 성생활에 대한 진실된 피드백은 신혼 초기부터 이뤄질수록 좋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미명 아래 선의의 거짓말이 반복되다 보면 오히려 부부간의 성 갈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 그래서 결혼 10년, 20년째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임에도 상대방의 성적 취향이 어떤지, 어떤 자극을 원하는지, 어찌 반응하는지 제대로 모르는 엇박자 부부가 너무 많다.
이런 엇박자 부부를 성치료할 때 서로에게 적절한 피드백이나 요구를 해보라고 지시하면 부부들은 당황해 한다. 그런 피드백이 상대방을 위축시키거나 좌절시킬 것이라 여겨 거부하는 것이다. 하지만 치료 과정 중에 적절한 수준의 요구와 피드백 등에 익숙해지면 상호 원하는 바와 부족한 것을 더욱 잘 이해하게 돼 성생활 팀워크는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기도 한다.
반면 진실의 피드백이 이뤄지지 못한 부부는 결국엔 성적 권태기에 빠진다. 지금이라도 늦었다 체념 말고 성생활에 ‘진실의 입’을 가지길 바란다. 진실과의 직면에 당장은 상처를 소독하듯 쓰라리겠지만, 상처가 아물고 나면 부부는 최상의 팀이 될 수도 있다. 그보다 더 심한 경우는 전문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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