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도 동면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 다가오는 봄날, 겨울 내내 실내에서 걷기를 하다 산을 오르기로 했다. 봄을 즐길 수 있는 길은 들풀들이 푸릇푸릇 생명을 돋아내는 흙 길이다. 볼더 뒷산을 오르며 박노해 시인의 ‘이 작은 흙 길로’라는 시 구절을 떠 올려 보았다.
/ 나는 작은 흙 길을 사랑했네. / 작은 발걸음 하나하나가 포개져 만든 / 작고 굽은 길들을 사랑했네 / 잘 포장된 직선의 고속도로가 / 삶의 길이 될 수는 없었네 / 사람의 길은 오직 / 사람의 발자국만으로 만든 길이기에 / 나는 작은 길들을 사랑했네. /………………..
그저 바쁘다는 마음으로 빠른 속도를 내어 달려가기만 하던 삶을 이렇게 흙 길을 걸으며 되돌아보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특히 경이롭고 아름답기까지 한 볼더 뒷산을 내 동산같이 걸으며 자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마태복음5:5)는 성경말씀을 떠올리게 되었다. 어찌 생각해 보면 땅을 차지한다는 것은 악착같은 땅에 대한 욕심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상에 끊임없이 일어나는 전쟁은 그냥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다 땅을 차지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것은 말을 타고 창과 칼을 휘두르며 화살을 날리던 옛날이나, 최신 무기를 동원하여 전쟁을 하는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면 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했을까?
온유(溫柔) 하다는 것은 ‘성격과 태도가 부드럽다’는 뜻이다. 따뜻한 봄기운이 땅에서부터 올라온다.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던 흙이 따뜻하고 부드럽게 변한다. 추운 겨울 내내 꽁꽁 얼어 붙어 있던 땅이 따뜻해지면 산과 들에 있던 겨울나무들과 들풀들이 생명력을 회복하게 된다. 벌거벗은 몸으로 추위에 아무리 짓눌려 있었어도 뿌리만 땅에 내리고 있으면 푸릇푸릇 새싹을 움트게 한다. 그것이 생명력이고 온유함이다. 봄의 땅은 온유한 생명력이다. 어떤 씨앗이라도 온화한 땅 속에 뿌려지면 생명이 꿈틀거리게 된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흙이라야 생명이 싹틀 수 있다. 온유한 사람만이 생명을 품을 수 있고 생명을 살려낼 수 있다. 생명을 품어낼 수 있는 마음이 있기에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단단하게 굳은 땅은 갈아 엎어야 부드러워질 수 있고 차가운 땅은 따사로운 기운이 스며들어가야 따뜻해 질 수 있다.
찰스 다윈이 생의 마지막까지 연구한 것이 지렁이였다고 한다. 지렁이는 인류문명을 가능케 한 흙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공헌을 하는 생물이다. 흙을 먹고 사는 지렁이는 식물의 부스러기를 흙과 함께 섞고 분비물로 거친 입자를 더욱 부드럽게 해서 기름진 땅을 만든다. 흙을 갈아 없는 쟁기는 인간이 발명한 가장 값진 농기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 땅을 갈기 전부터 지렁이는 땅을 갈아엎고 있었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어쩌면 땅을 부드럽게 하고 기름진 땅을 만드는 지렁이만도 못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얼마든지 겉으로 온유한 척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따사로운 기운은 우리의 성품, 우리의 성격이 온유한데서 온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 따뜻하고 부드러운 손길,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 한 번 더 나누면 모두가 온유한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온유한 마음을 품고 좀 더 너그럽게 살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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