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독립성을 키워라

    어린이들의 꿈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순수 동화로 알려진 피터팬. 실상은 20세기 초반 영국 중산층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일종의 사회 고발 동화였다. 영원히 늙지 않고 어린이로 남은 네버랜드의 피터팬이 진료실엔 가끔 나타난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온 20대 후반의 남성 P씨. 그의 어머니는 신혼의 아들이 섹스리스로, 아내에게 아무런 시도조차 않는 현실을 의아해했다.
“부족할 게 없어요. 아들은 잘 차려 놓은 밥상조차 거들떠보지 않는 셈이죠.”
유능한 아버지 아래 경제적으로 윤택했고 부모의 희망대로 명문대를 졸업한 P씨. 결혼 전까지 연애 경험이 전무한 아들을 부모는 그저 때 묻지 않은 아이라 여겼다. 결국 부모가 나서서 양갓집 규수와 혼인을 시켰는데 성행위에 관심이 전혀 없다. 이에 어머니는 무엇이 부족한지 성기능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재촉해서 직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족한 게 있지요. 바로 독립성입니다.”
P씨는 평생을 그렇게 차려 놓은 밥상을 먹는 존재였다. 이래라 저래라 하는 부모의 명령에 P씨는 스스로 문제나 목표를 찾고 성취하는 과정을 겪지 못했다. 회사에서도 P씨는 그저 성실한 조직원일 뿐이며 사적인 인간관계를 가질 줄 몰랐다. 틈나면 음악이나 게임 등과 같은 가상현실을 통해 만족할 뿐이다.
“남편은 섹스보다 컴퓨터 게임이 낫대요.”
남편의 수동성에 속을 썩이던 미모의 아내도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당연히 P씨는 신체적으로 정상이다. 그렇다고 단순 우울증도 아니고 무기력증도 아니다. 성장기에 적절한 독립성이나 주체성을 갖고 인간관계의 기술을 체득하지 못했기에, 특히 인간관계 중 가장 강렬한 관계인 성생활은 더욱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다.
미국의 D 카일리 박사는 1970년대 성인 사회에 어울리지 못하는 ‘어른아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피터팬 증후군’이라 명명했다. ‘피터팬 인간’들은 무책임·불안·고독감·자기애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지며 그중의 하나가 성역할의 갈등이다. 이들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이성 관계에서 주도적이거나 동등한 역할을 기피하고, 상대 여성으로부터 모성 역할을 갈구한다. 실제로 이들에게선 성욕 저하, 발기 부전 등 성문제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형 피터팬 남성들은 P씨처럼 대도시의 엘리트 집안에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아주 출중한 집안 내력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부모의 유능함과 컨트롤을 극복한다는 게 불가능한 일이라 여긴다. 그들의 무의식엔 자포자기의 심정이 깔려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지나친 입시교육에서 어린 시절부터 친구를 사귀는 등 인간관계의 근본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 점도 영향을 준다.
P씨의 경우 성기능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아내와의 친밀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이 바로 치료의 시작이다.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수준의 피터팬 증후군은 내버려둘 경우 중년 이후의 삶이 더욱 순탄치 못하다. 피터팬의 원작자인 배리는 어른이 된 피터팬의 모습이 바로 후크 선장이라고 했다. 방치된 피터팬 증후군 환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사회적 무기력증이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져 비극적인 말년을 맞을 수 있다. 악어에게 잡아먹히는 후크 선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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