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사냥꾼>, 1565년, 패널에 유채, 117X162, 빈 미술사 박물관 소장.

     한 겨울인데도 푸근한 봄날이 계속되는가 싶더니 갑자기 한파가 몰아친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지만 그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다.
겨울 풍경을 그린 작품 중에는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1528-1569)의 ‘눈 속의 사냥꾼’이 가장 유명하다. 이 작품은 브뤼겔이 말년에 제작한 풍경화 연작 ‘계절’ 중 하나로, 드넓게 펼쳐진 설경은 이전에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미술사상 최초의 눈 온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브뤼겔의 ‘계절’ 연작은 풍경화로서 미술사에 이정표가 되는 작품으로, 당시 풍경화는 회화의 한 분야로 인정받지 못했다. 브뤼겔은 ‘계절’ 연작을 통해 풍경화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바꾸어놓았으며, 이 작품은 네덜란드를 비롯해 북유럽 풍경화 전통에 기초가 되었다.
‘눈 속의 사냥꾼’은 ‘계절’ 연작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12개월을 나타내는 연작 중 하나인 이 작품은 가장 추운 겨울 두 달을 나타낸 것이다. 더 이상 동화적이거나 환상적이지 않은 풍경은 자연에 대한 예리한 관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눈 덮힌 하얀 대지, 지평선 위로 보이는 은빛 하늘, 옥빛 빙판은 실제의 자연을 관찰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정경인 것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나무,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건물과 사람들을 검은 윤곽선으로 처리해 하얀 눈과 대조를 이룬다.
이 작품에서는 사냥꾼이 눈 속을 뚫고 나와 마을 입구에서 마을을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전경의 짙은 나무와 유사한 검붉은 톤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뒷모습으로 그려진 사냥꾼들의 표정이 보이지는 않지만, 발목까지 빠지는 눈길을 힘겹게 헤쳐나가는 모습에서 그들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 사냥꾼들의 뒤를 따르는 사냥개들의 모습도 힘겨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대신 전경에 우뚝 선 나무들은 자연의 위풍당당함을 과시하는 듯 하다. 이 나무들은 사냥꾼이 있는 왼쪽에서 오른쪽 마을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유도한다. 
이들이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을 살펴보자. 계곡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얼어붙은 연못에 생긴 스케이트장에서 여유롭게 놀고 있고, 검은 새는 하늘을 날고 있어 전체적으로 평온한 느낌을 주고 있다.
화면 오른쪽 멀리 바위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은 1550년 브뤼겔이 알프스를 여행했던 기억을 떠올려 표현한 것이다. 단순한 네덜란드 풍경에 알프스 산맥을 그려 넣은 까닭은 당시 풍경화는 단순히 특정 장소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화가 자신의 의도를 복합적으로 알리기 위해 다른 풍경과 접목시켰기 때문이다.
화면 왼쪽 사냥꾼 옆에 있는 집에서 사람들이 멧돼지 털을 불에 그을리고 있다. 그 당시 돼지 도살은 보통 1월에 하는 연중행사였기 때문에 작품 배경이 1월임을 알려준다. 붉은색의 모닥불은 거세게 부는 겨울바람을 표현한다.
마을 중앙 스케이트장에서는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 썰매를 타는 사람, 골프를 치는 사람, 컬링을 하는 사람 등 모두 45명이 겨울을 즐기고 있다. 그들 옆에 짐마차를 끌고 가는 사람이 길을 가고 있다.
이 작품을 보면 브뤼겔이 자연 현상을 얼마나 세심하게 관찰했는지를 알 수 있다. 겨울 나무의 마른 가지와 그 위에 쌓인 하얀 눈, 나뭇가지 위에 앉아있는 새들, 멀리 보이는 은빛 마을 등 모두가 한편의 시처럼 고요하다. 머리에 땔감을 이고 가는 아낙, 얼음판 위의 썰매를 끌고가는 여자의 모습에서 대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화가의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북적거리면서 활기찬 일상의 이야기를 풍경화 속에 조화롭게 표현한 브뤼겔의 ‘계절’ 연작은 지금 다섯 점만 남아 있다.
처음 ‘계절’ 연작은 브뤼겔의 후원자이자 부유한 은행가였던 니콜라스 용헬링크가 주문한 작품으로 그의 대저택을 장식하기 위해 제작했다. 그 이후 ‘계절’ 연작은 황제 루돌프 2세가 수집했지만 30년 전쟁 동안 발생한 프라하 약탈 이후 일부만 남아 있다. 이 작품은 여섯 개의 패널로 한 계절당 두 개씩 이루어졌을 것이라고만 추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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