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쟁이>, 1596~1597년경, 캔버스에 유채, 99x131,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21세기 첨단 과학으로도 알 수 없는 것이 미래다. 그러기에 새해가 되면 가장 바쁜 직업 중 하나가 점쟁이다. 점쟁이는 역사 이래 가장 오래된 직업 중에 하나다.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과 미래를 예측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앞날을 설계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점쟁이를 찾고 있다.
하지만 점쟁이라고 해서 불투명한 미래를 확실하게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예측이 맞으면 좋고 틀려도 그만이라는 식이다. 미래에 대한 책임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점쟁이를 처음으로 그림에 등장시킨 화가는 카라바조(1571-1610)다. 서민들의 일상을 그린 카라바조는 그림에 처음으로 사기꾼이나 도둑을 등장시켰다. 그런 테마는 그 이전에는 볼 수 없는 주제였다. 카라바조는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에 반대하는 자신의 성향을 드러내기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카라바조는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서민들의 생활상과 같은 통속적인 주제를 현실감 있게 표현했다. 그는 당시 일반적으로 화가들이 표현한 인물들과는 거리가 먼 개구쟁이, 사기꾼, 집시들, 그밖에 온갖 인물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카라바조의 ‘점쟁이’은 여자 점쟁이에게 젊은 남자가 손금을 보고 있는 장면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집시 여인은 젊은 남자의 눈치를 보면서 그의 손을 잡고 있다. 부유한 남자는 여인에게 손을 맡긴 채 호기심에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여인은 손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능숙한 손놀림으로 남자의 반지를 빼고 있다. 젊은 남자는 반지를 빼는 여인의 손길을 느끼지 못한다. 여인은 이 남자와 시선을 맞추며 훔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도록 한다. 
치마를 한쪽 어깨에 매달아 입고 있는 점에서 작품 속 여인이 집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독특한 차림을 한 집시들이 행인들에게 점을 봐주고 돈을 받았다. 그 당시 이런 차림의 여자들은 이집트여자라고 불렀다.
깃털 달린 모자와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자는 부유한 귀족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귀족의 상징인 칼을 차고 있다. 허리에 장갑을 쥔 손을 대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물질적인 부유함과 세상에 대한 자신감이 보인다.
이 작품에서 집시 여인은 젊은 남자에게 두 가지를 훔친다. 운명을 점친다는 거짓말로 돈을 훔치고 그것을 미끼로 반지도 훔친다.
카라바조는 이 작품에서 자연 속에 인물을 배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집시 여인의 행동에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배경을 생략했다. 그는 길을 가다가 집시 여인을 불러서 그녀를 모델로 이 작품을 완성했는데 그가 처음으로 시도한 모델을 현장에서 찾아 그리는 방식(요즘 길거리 캐스팅에 해당됨)은 다른 화가들에게 유행처럼 번졌다.
카라바조는 화가로서 큰 성공을 기대하면서도 의뢰받은 종교화 대신 길거리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서민들의 생활상을 현실감 넘치게 표현하기를 좋아해 당시 화가들이 선호했던 인물들에서 벗어나 매춘부, 농부, 부랑아 등을 혁신적으로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하면서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구축한다. 
하지만 카라바조의 작품을 미술 애호가나 귀족들은 선호하지 않았다. 결국 귀족들의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던 그는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종교화나 신화를 표현해 논란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카라바조의 재능을 알아본 화상 발랑탱이 종교화를 의뢰했으나 그가 그린 것은 사기꾼을 묘사한 <점쟁이>였다. 이 작품을 받은 발랑탱은 카라바조에게 의뢰한 액수를 다 지불하지 않았고, 카라바조는 다시 거리로 부랑아 생활을 하게 된다. 화가로서 경력이 16년밖에 안 되는 카라바조는 불가사의하고 위험한 삶을 살았다. 그는 도박과 술에 빠지고, 결투를 벌여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로마로 도망치는데 성공했다.그러나 도주 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말다툼을 벌이는 등 사고를 치다가 1610년에 포르토 에콜레에서 살해당하고 만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