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뜰의 화초를 보거나 나무들을 보노라면 다시 살아남(부활)의 시기인 것을 온 몸으로 느낄 수가 있다. 긴긴 콜로라도의 겨울을 보내고 부활절기를 맞이 하기까지 내 마음과 입술을 떠나지 않은 노래가 있다. 찬송가 같은 대중가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볼쇼이 합창단이 이 노래를 감미롭게 부르기까지 했다. 해바라기란 가수들이 부른 이주호의 “사랑으로” 이다. 필자는 이 노래에서 “부활은 사랑의 열매”인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노래를 다시 불러본다.
/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 바람 부는 벌 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타오르네. /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 세계적으로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에서 저자는 ‘나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이 나를 이끌어가는 삶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인데, 예수는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직 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그 주변에 어느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예수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하며 광야로 나가 40 주야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람이란 돈과 권력과 명예가 아니라 다른 그 무엇이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바람 부는 언덕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 예수의 사역은 광야에서 시작되었고, 그의 일생은 바람 부는 언덕에 홀로 서 있는 듯한 삶이었다. 하비콕스가 그의 책 「세속도시」에서 「군중 속의 고독」을 말하듯이, 예수는 늘 군중 속에 둘려 쌓여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가난하고 병들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남을 껴안아 주고 섬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득권 자들에게 늘 공격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예수는 늘 홀로 들판이나 산으로 가서 기도했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능력을 필요로 했다. 바람 부는 언덕에 홀로 서 있어도 그가 외롭지 않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바람막이가 되어 주셨고,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게 지켜주심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린 삶이었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삶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의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늘 푸르름을 지니고 있기에 불의와 맞서는 이미지, 즉 애국가나 선구자 같은 노래의 주제가 되기도 한 것이다. 솔잎 하나 떨어지고 눈물 따라 흐른다고 고백하는 것은 맑고 바르게 살아가려는 삶이 얼마나 고단한 일이며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굴욕과 멸시와 천대를 다 견디며 가야 하는 길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길이다.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하고 가장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그는 또 홀로 십자가의 길을 가야 했다. 그 길은 치유와 회복과 구원의 길임에도 말이다.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 오르네’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 수십, 수 백배 결실을 맺는다고 가르쳐주신 진리가 이 뜻이다. 후에 제자들은 ‘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깨닫는다. 사람들의 가슴가슴마다 두려움이 없어지고 새로운 희망이 샘솟듯 올라오기 시작했다. 잃어버렸던 힘과 기쁨이 다시 싹터 올라왔고 그들이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을 부활 예수께서 찾아와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고 복을 빈다. 그곳에 어둠의 세력이 물러가고 다시 살아남이 있게 된다. 자기를 배신했던 이들을 끝까지 사랑했던 예수의 사랑이 사람들의 마음을 회복하게 한 것이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는 사랑의 행위는 추상적인 용어가 아니라 다시 살아 움직이는 부활의 열매인 것이다. 나눔과 섬김의 행위는 축복의 통로다(요13:17). 교회가 제일이고, 교회가 중앙이고, 교회가 크고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유혹에서 빠져 나와 한 두 사람이 모인 곳에서라도 어두운 세상에 손을 내밀어 새 하늘과 새 땅으로의 변화가 일어나도록 해야 할 책임이 기독교인들에게 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다시 살아남의 축복이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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