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구멍’으로 들여다본 관능의 여인들

      목욕탕이 가장 발달한 도시는 고대 로마였다. 로마의 목욕탕은 단순히 씻기만 장소가 아니라 사교의 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목욕탕은 남녀가 분리된 공간이다 보니 목욕하는 이성을 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한 번쯤 목욕하는 이성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목욕하는 여자에게 흥미를 느껴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는 앵그르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1780~ 1867)의‘터키탕’은 그의 말년 작품으로 목욕하는 여자들 작품 중에 가장 대표작이다. 젊은 시절부터 목욕하는 여자에게 흥미를 느낀 앵그르는 18세기 무렵 터키 주재 영국대사 부인이 쓴 ‘터키탕의 견문기’를 읽고 영감을 얻어 이 작품을 제작한다. 앵그르는 여성의 누드를 표현하는 데 신화의 주제를 버리고 상상으로 할렘 여자들이 목욕하는 장면을 표현했다.

      여인들의 관능적인 몸을 표현한 ‘터키탕’은 앵그르 작품 중에 드물게 구성 자체가 공상적이다. 누드의 정물화로 불릴 만큼 많은 나체의 여인들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화폭 속의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를 가진 여인들은 가만히 앉아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목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작품은 원래 사각형 캔버스에 제작했으나 그 후 원형 캔버스로 변경되었다. 원형 캔버스는 마치 열쇠구멍으로 목욕탕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앵그르는 원형 캔버스를 사용했다.

      이 작품에서 악기를 들고 있는 중앙의 벌거벗은 여자의 모습은 앵그르가 28세 때 제작한 ‘발팽송의 욕녀’라는 작품에서 보여준 자세를 재현한 것이다.
악기를 들고 있는 여인 오른쪽에 어색할 정도로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여인이 앵그르의 두 번째 부인 델핀이다. 앵그르는 그녀를 티치아노의 ‘안드리아의 바커스 축제’에 나오는 쾌락을 상징하는 여인에게서 영감을 얻어 표현했다. 그녀 뒤에서 서로 가슴을 만지고 있는 두 명의 여인은 동성애를 암시하고 있으며 그 옆에 몸종에게 머리 손질을 맡기고 있는 여인은 팔짱을 낀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왼쪽 끝에서 요염하게 서 있는 여인은 처음에 그려 넣지 않았으나 나중에 앵그르가 구도상 넣은 것이다.
화면 앞에 있는 도자기로 된 주전자와 잔, 뒤쪽에 벽에 놓여 있는 큰 도자기 그리고 여인들의 머리 장식 문양은 이국적인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앵그르의 ‘터키탕’은 여성의 누드를 다양한 방향에서 다룬 그동안의 경험으로써 집대성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앵그르는 에로틱한 내용을 더욱 고양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왜곡시켜 묘사했다. 이 작품은 나폴레옹의 주문으로 제작되었지만 노골적으로 표현한 여성의 관능성을 받아들이지 못해 거절당한다. 이후 이 작품에 관심을 보인 부유한 투르크인에게 팔려 소장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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