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헨델은 음악의 신동이었다. 그는 17세 때 고향 할레에 있는 성당의 오르간 연주자가 되었다. 일년 후에는 함부르크에 있는 카이저 오페라 하우스의 바이올린과 하프시코드 연주자가 되었다. 정식으로 음악을 시작한 지 불과 4년 후인 21세에는 이미 건반 악기의 거장이 되기에 이르렀다. 작곡으로 방향을 바꾸었음에도 그는 더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작곡을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나지 않아 영국 왕 조지 1세의 지휘자로 임명을 받았다. 40세가 되었을 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곡가 되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과 명성에도 불구하고 헨델은 엄청난 인생의 역경을 만나게 된다. 영국 작곡가들의 경쟁은 아주 치열했다. 자기보다 나은 사람은 끌어내리려고 했고, 못한 사람은 아예 자라나지 못하도록 짓밟기까지 했다. 청중들 역시 얼마나 변덕스러웠지 모른다. 구름 떼처럼 모여 들던 청중들이 하루 아침에 발걸음을 끊기도 했다. 헨델은 음악 자체보다는 음악 주변에서 벌어지는 양심을 저버린 행동들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에 동조하고 싶지 않았던 헨델은 몇 번이나 경제적으로 파산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자기들과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의 음악적 재능까지 사장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가 작곡한 곡을 찾는 사람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더구나 그를 더 이상 지휘자로 고용하는 곳도 없었다.
더욱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건강이었다. 헨델은 뇌졸증으로 쓰러졌다. 그 결과 오른 팔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손가락조차도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재활 훈련을 통해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지만 그는 이미 모든 의욕을 상실한 상태였다. 겨우 56세였던 헨델은 음악 활동을 그만 접기로 결심을 했다. 더 이상 용기도 열정도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음악만이 아니라 인생 자체에 대해 크게 실망한 헨델은 마지막 고별 연주회를 하고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숨어 지냈다.
하지만 고별 연주회를 한 지 4개월 만에 믿기기 않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찰스 제닝스라고 하는 친구가 그를 찾아온 것이다. 평상시에는 잘 만나지 않던 친구이다. 찰스는 헨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토대로 한 가극 대본 하나를 전해 주었다. 이미 폐인이 되다시피 한 헨델에게 무슨 기대를 안고 찾아온 것이 아니다. 실망한 친구를 위로도 할 겸 그가 작곡을 한하면 작은 연주회라도 하나 우정으로 열어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가극 대본을 받아온 헨델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본을 읽으면서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의 가슴은 점점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즉시 영감이 봇물 터지듯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폐인이 되었다고는 믿겨지지 않았다. 그는 열정적으로 21일 동안 쉬지 않고 곡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이틀 동안은 오케스트라를 위한 편곡을 했다. 드디어 24일 만에 260페이지의 대 작품을 완성했다. 그는 이 작품을 ‘메시아’라고 불렀다. 오늘날 이 헨델의 ‘메시아’는 수 백 년이 지나는 동안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헨델의 전기 작가들 가운데 하나인 뉴먼 플라워 경은 ‘메시아’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그 작품의 광대함에 비해 정말 짧은 시간이 걸렸고, 그것은 아마도 영원히, 음악 작곡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터닝 포인트의 기회가 한 번 이상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기회를 대부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욕심이 앞서서 그만 그 기회를 활용하는데 실패하고 만다. 헨델처럼 인생의 위기 가운데서도 이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삶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온 것도 바로 그에게는 터닝 포인트였다.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고 갈대아 우르에 그대로 머물렀다면 지금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도 그에게는 터닝 포인트였다. 예수님을 가장 핍박하고 믿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인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던 사람이다. 하지만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난 기회를 그는 인생의 방향을 바꾸는데 기꺼이 사용을 했다. 그 결과 바울은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가장 많이 살린 사람이 된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예고 없이 다가온다. 누구를 통해서, 어떤 사건을 통해서 올 지 우리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그 터닝 포인트의 기회를 잡기만 하면 우리 인생은 놀랍게 변할 수 있다. 터닝 포인트가 불현듯 다가왔을 때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삶의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자신을 늘 속이는 거짓말이 있다. ‘인맥이 없다, 가방 끈이 짧다, 태생이 그렇다, 환경이 바쳐주지 않는다, 이미 다 해보았다’ 이런 거짓말에 속고 있으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결코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가져오게 하는 7가지 삶의 자세가 있다.
첫째, 고통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쉽고, 안정되고, 편안한 길에서 오지 않는다. 고통은 우리를 아프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고통은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든다. 겸손하게 만든다. 그 동안 보이지 않던 것을 보게 하는 것이 고통이다. 둘째 단 하나의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뇌세포의 10%도 쓰지 않고 살아간다. 내가 알고 있는 나 외에도 다른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던 삶의 방식과 다른 삶도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개발하게 된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셋째 만루 홈런의 환상을 버려야 한다. 한 번에 큰 것을 이룰 수는 없다. 작은 성공을 거듭해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충실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못하지만 다른 데 가면 잘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을 잘해야 다른 일도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도 인정받기 때문이다.
넷째 기존에 알던 사람 외에 인맥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 만나던 사람만 늘 만나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대를 갖고 하루를 시작해보라. 설렘과 감사가 있을 것이다. 다섯째 자신의 이야기를 매일 글로 쓰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오늘 내가 아침에 일어나 어떤 일을 했는지를 차례대로 써보라. 매일 똑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특별히 쓸 것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쓰라는 것이다. 글로 쓰거나 글로 쓴 것을 가지고 생각하기 전에는 변화를 일으킬 마음의 움직임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같은 일거리를 글로 쓰다 보면 인생이 너무 단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다음 날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결국 내 자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매일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섯째 막힐 때면 잠시만 뒤로 물러서는 것이다. 어떤 일이 막힐 때가 있다. 더 이상 해결 방법이 떠오르지 않기도 한다. 갑자기 여러 지 일이 몰려와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때는 한 발작 물러서는 것이다. 급하게 해결하려고 뛰어서는 안 된다. 걱정 근심이 가득하면 단순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 일과는 상관 없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물론 잠깐 동안이다. 그 일 자체를 계속 외면할 수는 없다. 분명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서 보면 길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변화는 느닷없이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30년을 절망하고 낙담했던 헨델이 세계 음악사에 우뚝 솟게 된 것은 단 24일이면 충분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온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이루신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항상 다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새로운 내일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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