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살다 보면 한 순간에 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보니, 어느 누구도 속단은 금물이다. 얼굴조차 대면하기 싫었던 사람이 어느 순간에 친구가 되어있고, 굳게 믿어왔던 가치관도 어느새 흔들려 나만의 좁은 식견이 아니었나 의심되는 찰나가 수없이 다가온다. 
필자는 약간의 결벽증이 있다. 아이들이 집밖에 잠시 나갔다가 와도 손을 씻으라고 안달을 하고, 아이들이 분명 10분전에 손을 씻고 텔레비젼을 보고 있더라도 식사 때가 되면 또다시 씻어야 하며, 손님들이 집에 놀러 왔다 가면 일일이 흔적을 찾아 다니며 청소기를 돌려야 한다. 마켓에서 장을 보고 들고 온 박스도 세정제를 묻혀가며 닦고, 중고용품점에서 구입한 아이들의 책도 한장 한장 소독제로 닦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아들만 있고 필자도 머리가 짧아 머리끈이 전혀 필요없는 집이지만 늘 서랍 속에 준비해두고 있는 이유도 혹시라도 긴 머리를 묶지 않고 오는 손님이 오면 머리카락이 집 안에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건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필자가 털 빠지고 벼룩이 득실거릴 수 있는 개를 좋아할 리는 만무했다.
그런데 필자가 개를 샀다. 일생일대의 전환점이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생활방식을 아는 모든 지인들은 극구 말렸다. 절대 개를 키울 수 없으테니까 불쌍한 개를 괴롭히지 말고 아예 사지를 말라고 말이다. 필자도 이런 결심을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3년전쯤인가 남편과 아이들은 개를 키우고 싶다고 농성 아닌 농성을 시작했다. 지나가는 개만 보면 갈망하는 눈으로 쳐다보면서 동시에 필자에게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는 원성의 눈빛을 보냈다. 아이들은 공원에 놀러 가면 다른 친구들은 개를 데리고 와서 같이 노는데 자기들은 같이 놀 개가 없다고, 개를 키우는 집에 놀러가면 늘 왕따가 된다는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편은 집안을 더럽히면 더욱 스트레스를 받을 아내를 생각해 차마 개를 사자는 말은 못했지만 산책하고 있는 개들을 볼 때면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한없이 동경해왔다.
필자가 개를 키우기 싫어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2년전 쯤에 우리 기자가 여행을 가기 위해 열흘 동안 개를 맡긴 적이 있었다. 우리 소유의 개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남의 집 개라도 잠시 가져 보겠다는 남편과 아이들의 강압에 의해 열흘을 허락했다. 물론 아이들은 자신들이 강아지 산책도 시켜주고 잘 챙겨주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다. 하지만 결과는 내가 우려했던 대로 결국 매일 아침 산책을 시키는 것도, 기저귀를 치우고 까는 것도, 밥을 챙겨주는 것도, 화장실을 갔다 오고 난 뒤의 뒤처리와 소독건 모두 필자의 몫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열흘이 지나고 필자는 앞으로 절대로 개를 키워서는 안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그런 필자가 생각이 바뀐 것은 순전히 가족 때문이었다. 7시 이전에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남편은 아침마다 개 산책을 시키고, 개 목욕과 먹을 것을 챙기는 것도 절대로 필자에게 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난 한달 내내 했다. 아이들도 개로 인해 엄마가 할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며, 매일같이 자동 청소기를 스스로 돌리겠다는 약속을 거듭했다. 솔직히 나도 이 약속들이 끝까지 지켜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의 마음이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이곳 낯선 땅에 친한 친구도 없이 적적하게 지내는 남편에게 뭔가를 해 주고 싶었고, 아이들에게도 한번쯤은 개를 키우는 추억을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나는 결벽증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몇 십년 동안 절대 깨질 수 없는 나의 생활 원칙이라고 믿어왔던 것들 중 한 가지가 사라져버렸다. 
생각해보면 세월이 흐르면서 필자의 생각도 많이 달라져 왔던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참가했던 전교조 참교육 시위 또한 그랬다. 당시는 부패되어 있던 교육현장의 잘못을 바로잡자는 것이 주요내용이었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전교조 소속이라는 이유로 시작했었는데, 그 단체의 행보에 발을 담그기 시작하면서 그 조직의 생각이 전부 옳다고 여겼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대학을 가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그 곳의 이기적인 부분이 보이기 시작했고, 솔직히 여기에 내 모든 청춘을 쏟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필자는 그곳에서 손을 떼고 또다른 미래를 선택했다. 아버지가 공무원이니까 절대로 데모를 하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당부까지 뒤로 하면서 굳건히 믿어왔던 그 가치관은 5년을 채 가지 못했던 것이다. 
5, 6월이 되면서 한인타운에서는 많은 문화행사들이 준비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 이들을 접할 때면 으레 듣는 말들이 있다. “저 사람이 함께 하면 못 도와준다, 저 사람이랑 가까우면 돕기 싫다, 저 사람과 함께 하는 행사이면 보러 가기 싫다”등의 말이다.
작은 도시의 특성상 우리는 한 집만 건너면 대부분 연결이 되어있다. 친구나 친척이 아니면 아는 사람의 친구나 친척으로 말이다. 이런 곳이야말로 절대 영원한 친구 혹은 영원한 적이 있을 수 없다. 실제로 10여년 전 자신의 집 건축일을 맡겼던 사람과 소송까지 벌였던 그 집주인은 지금 그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절대로 다시 만나지 말자며 침까지 뱉고 철천지 원수로 헤어진 부부가 몇 년 후 다시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봤다. 이럴 때면 오히려 주변에서 소송과 이혼에 찬성하면서 편을 들어준 사람들만 민망스럽다. 한때 여당이었던 국회의원들 또한 지금은 야당에서 예전에 자신이 적극 지지했던 안건들을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지 않은가.
이처럼 속단은 금물이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바뀔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의 생각이 내일까지 굳건하게 지켜질 것이라는 생각 또한 편견이다. 오늘의 적 중에 내일의 진정한 친구가 있을 수도 있다. 함부로 말하고, 결정하고, 비방하는 우를 범해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말하기 전에 한번 더 신중히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성숙한 모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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