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기독교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이야기를 새삼 끄집어 내는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마는 ‘기독교’을 ‘개독교’라 부르고, ‘목사’을 ‘먹사’라 폄하해서 부르기도 한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망언을 일삼는 이들이 있어 ‘목사’들이 ‘목레기’(목사쓰레기)라는 말을 듣게도 되었다. 누구를 탓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런 수치를 당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노라 하면서 예수를 따라 살지 않기 때문이다. 개신교인들이 타 종교인에 비해 사회봉사는 제일 많이 하면서도 신뢰도가 제일 낮은 원인이 ‘믿는 것’과 ‘따름’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제 더 이상 말로만 예수를 믿는다 하지 말고 성실하게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16:24). 그런데 이 말씀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을 들으신 예수께서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공적 사명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스승의 고난과 죽음의 예고를 받아드릴 수가 없었다. 충격에 휩싸인 베드로가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라고 막아 섰다. 그때 예수께서는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라고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예수의 길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이 사탄인 것이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원칙이 무엇인지 말씀하신 것이다. 이 원칙은 개신교와 천주교 또는 교파를 초월하여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원칙인 것이다.
예수를 따르는 첫째 원칙은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 부인은 철저한 자기 비움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새 삶은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이라 말한다(엡4장). 옛 사람을 벗어 버리는 것은 탐욕과 독선이다. 남보다 위에 서고자 하는 욕망,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는 탐심을 버리는 것이다. 자기만 의롭다는 독선을 버려야 예수를 따를 수 있다. 탐욕과 독선은 철저히 비워내야 할 옛 사람의 모습인 것이다. 자기를 비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 나의 것을 비움은 내가 가지고 있던 것을 나눔으로 연결 되어야 한다. 탐욕과 독선을 나누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배움과 생각, 재물을 다른 사람들과 나눔으로 비로소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게 된다.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나라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는 이루어 진다. 좋은 것을 나누다 보면 흔들어 넘치도록 더 많은 은총을 체험하게 된다. 이 기쁨은 예수를 진정으로 따르는 사람들이라면 어느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예수를 믿는다며 교회를 다니고 있다.
예수를 따르는 둘째 원칙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 형틀은 인간이 육체적으로 겪을 수 있는 고통을 최대한 길게 가지게 하기 위해 고안된 형틀이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기고 채찍으로 때리며 극도의 수치심을 불러 일으키게 한 것이 십자가 형틀이다. 예수는 이 형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갔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예수를 따름에 있어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을 각오를 단단히 하라는 뜻이다. 그러니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앞세워 자기 탐욕을 채우고 있다. 예수의 생애와 정신,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지 않고 마치 십자가를 앞세워 값싼 축복을 바라고 있다. 십자가는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지고 가는 것이다. 묵묵히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일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앞세워 다른 사람들에게 절망과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결코 십자가를 지는 일이 아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생명 살림에 있다. 구원받은 자라 하면서 남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행위는 결코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삶이 아니다. 예수를 따르지 않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거짓이다. 믿음은 그 사람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삶은 예수 따름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것과 따르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래서 죽은 것이다(약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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