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최대의 축구 축제인 ‘월드컵’이 개최국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간의 상파울루 개막전을 시작으로 막이 올랐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다 함께 리듬을(All in one rhythm)’이라는 기치 아래 지역 예선을 통과한 32개국이 7월13일까지 경기를 펼친다.

      벌써부터 이변과 혼전의 양상이다. 지난해 우승팀이었던 스페인이 준우승팀인 네델란드와의 경기에서 5대1로 참패하고, 칠레에게도 패해 16강 진출마저도 좌절된 모습은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이변으로 기록될 것 같다. 조별리그 2차전에서 통산 6번째 우승에 도전하는 세계 최강 브라질은 파상공세를 퍼부으며 멕시코를 벼랑 끝으로 몰아붙였지만 수문장 오초아 골키퍼의 벽을 넘지 못하고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죽음의 조’로 불리는 G조 빅매치에서는 조직력으로 무장한 전차군단 독일이 세계 최고의 선수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칼을 4대 0으로 대파했으며, 미국은 아프리카의 강호 가나를 2대1로 제압하는 등 날마다 이변의 이변이 거듭되고 있다. 어제 있었던 한국과 러시아와 경기도 세계인의 눈으로 본다면 이변일 수 있다. 연봉 8억원의 홍명보 감독과 114억원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의 대결에서 전 세계는 자연스레 러시아의 승리를 점찍었다. 그러나 우리는 카펠로 감독이 이끄는 러시아를 맞아 당당한 경기를 펼쳤다.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함께 썼던 ‘홍명보의 아이들’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본 무대가 펼쳐지자 오히려 더 잘했다. 열흘전 가나와의 평가전에서 무기력하게 0대4로 패배를 당했던 선수들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록 무승부를 기록했지만 선제골을 넣으면서 훌륭하게 1차전을 마쳤다.

      이처럼 지구촌의 월드컵 열기가 후끈 달아 오르면서 한인타운의 분위기도 한껏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전 당일, 필자도 남편도 아이들도‘다시한번 대한민국’이 적혀진 빨강색 티셔츠를 꺼내입었다. 4년만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신라 식당의 직원들도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며 붉은 색 티셔츠를 입고 서빙을 하고 있었다. CDS 카드사에서는 무료로 월드컵 티셔츠를 배포했는가 하면, 한강식당에서는 러시아전을 보러 온 한인들로 붐볐다. 또, 빨강색 응원 티셔츠를 입고 장을 보러 온 주부들도 눈에 띄었다. 모국을 떠나 뿌리가 필요했던 우리들에게 마치 공통분모를 만들어주는 느낌이다. 우린 스포츠의 힘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스포츠가 감동스러운 이유는 하나의 목표를 가진 동지들이 있기 때문이다. 함께 응원할 수 있는 조국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뭉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민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한민국은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위대한 성과를 이룬 저력이 있다. 6.25 동란이 막끝나고 형편없이 초라했던 대한민국의 축구팀은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본선에 출전해  헝가리에게 9대0, 터키에게 7대0으로 대패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배불리 먹지 못했던, 제대로 된 유니폼도 없었던, 직항 노선이 없어 몇 번을 환승해 본선 경기전에 간신히 도착했던, 장시간의 비행기 노독도 풀지 못하고 뛰었던, 그렇게 힘든 시절이었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경기 시작 후 10분까지는 결코 한점도 주지 않겠다는 작은 다짐을 지켰다. 전쟁과 가난, 국가와 국민의 무관심이라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최선을 다한 패배이기에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이런 의지를 불태우며 태극전사들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한국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무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록 중이다. 한국은 출전국 중 피파 랭킹 꼴찌인 62위 호주에 이어 현재 57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1996년 역대  최저였던 62위에서 불과 2년만에 1998년에는 역대 최고 17위를 기록한 적도 있으니 낮은 수위에 절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에 진출했으며, 본선 폴라드와의 첫 경기에서 승리, 이어 미국, 포르투칼까지 제압하면서 조 예선에서 무패를 기록,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이후 16강에서 이탈리아, 8강 스페인 등 세계의 강호들을 연파하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비록 준결승에서 독일에 패했지만 아시아 최초 4강의 신화를 가지고 있는 팀이 아닌가. 
태극전사들이 자신감을 갖지 못할 이유가 없다. 태극전사들을 향한 범 국민적 응원 또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세월호의 비극에 빠져있는 국민적 분위기에 새로운 활력을 넣어줄 것이다.  한일 월드컵 이래 ‘붉은 악마’로 상징되어 온 응원이 대한민국 국민의 일체감을 높여주면서 세계를 감동시켰던 그 때가 새삼 떠오른다. FIFA가 ‘즐겨라, 대한민국’이라는 의미인 “Enjoy it, Reds’를 한국팀의 공식 슬로건으로 삼게 한 취지도 다를 리 없다.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지적된 홍명보호의 약점은 경험 부족이었다. 하지만‘홍명보의 아이들’은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를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16강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는 이유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을 통해 태극전사들은 투혼을 불태우고 우리 국민들은 다시한번 하나되어, 전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이변이 연출되길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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