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 총리 지명자가 결국 자진 사퇴했다.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된지 2주 만이다.
총리 후보자의 사퇴는 14년 전 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6번째이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1년 4개월 동안 벌써 세번째다. 안대희 총리 지명자가 전관예우 논란으로 지명 6일 만에 사퇴했고, 정권 출범 직전 내정됐던 김용준 지명자까지 포함하면 벌써 총리 지명자 3명이 국회에 임명동의안 제출 단계까지도 가지 못하고 사퇴하는 초유의 기록을 남긴 셈이다.
헌정사상 첫 기자 출신 총리로 기대됐던 문 후보는 지명 다음날부터 과거 교회 강연과 칼럼 등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논란은 KBS의 보도가 계기가 되었고 이후 문 후보자를 ‘친일 반민족’으로 몰았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거부감정인 친일 오해를 살 수 있는 부분도 있었다. 이에 대해 문 후보는 강연에서 부정적이고 수치스러운 역사를 언급한 것은 그것을 딛고 긍정적이고 자랑스러운 역사로 이어졌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듯 함부로 매도하고, 급기야 자신의 귀와 눈을 닫아버린 것이 아닐까 싶어 답답했다.
이번 파문의 일차적 책임은 부실한 청와대의 인사 추천, 검증 시스템에 있다. 사전에 검증해 선제적으로 대응했거나, 그렇지 않다면 사후 대응이라도 제대로 했어야 했다. 청와대에는 인사 추천과 검증을 담당하는 인사위원회가 있다. 인사위는 총리 후보자 두 명이 청문회도 가보지 못하고 연속 낙마하는 초유의 상황을 초래했다. 언론이 인터넷과 공개 정보를 뒤져 하루, 이틀 만에 찾아내는 것을 그냥 넘어갔다. 그 인사위의 위원장이 김기춘 비서실장이다.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김 실장 책임론이 나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 후보 뿐만이 아니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은 계속해서 불거져 나오고 있고, 또 다른 장관 후보자와 청와대 수석에 대해서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됐다. 어느 장관 후보자는 경찰의 음주 측정을 거부한 적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한 청와대 수석은 술자리에서 옆 사람을 맥주병으로 때린 적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청와대의 책임은 매우 무겁다. 특히 되풀이된 인사 실패, 그 원인으로 지목된‘수첩 인사’에 대한 박 대통령에게 통렬한 자성의 목소리가 요구되고 있다. 물론 국민 통합에도 적임인 만능의 총리감을 찾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이번만큼은 자기 사람, 사적인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사람을 구한다면 합당한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다가 기대했던 박근혜 정권이 사람만 바꾸다가 끝날까 염려스럽다.

        이런 와중에 일본 아베 정부는 20일‘고노 담화 검증 결과’를 통해, 1993년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이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했던 담화가 자율적인 판단에 따른 게 아니라 한국 정부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일 뿐이라는 식으로 왜곡하면서 우리의 염장을 지르고 있다.
1993년 8월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은 자체 조사 결과를 토대로 위안부 문제에 일본군과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었다. 그런데도 아베 정권은 21년 만에 진정성을 부인하기 시작한 것이다. 더 가증스러운 일은, 그러면서도 담화 자체는 인정한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다. 일본군과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직접 관여한 사실은 없지만, 과거 정부의 발표이니 마지못해 인정은 하겠다는 의미다. 교묘한 궤변으로 위안부 피해자들과 한국을 농락하고 있다. 담화를 폐기하고 싶은 본심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 정부가 거듭 밝힌 대로 고노 담화는 일본의 자체 조사와 판단에 따른 것임이 분명하다. 발표 당사자인 고노 전 장관도 “내가 한 일에 덧붙일 것도, 뺄 것도 없다”며 그 사실을 재확인했다.
아베 정부가 평화국가의 상징이었던‘무기수출 3원칙’을 지난 4월 철폐한지 석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자국 기업 13개에 대해 신형 장갑차 모형을 비롯해 지뢰탐지기, 기상레이더 등을 유로 사토리에서 선보이도록 종용한 배경이 무엇이겠는가. 침략 역사와 함께 군사 대국화도 정당화하겠다는 계산이다.
정치 원로들은 이번 문 후보자의 사태를 보고서“여론은 다만 참고사항일 뿐이다. 법 절차를 무시하고 청문회를 하지 않는 것은 헌정파괴이다. 야당 등 정치권 주장대로라면‘무균질’의 인물을 뽑아야 하는데, 지금처럼 청문회도 하기 전에 흠집내기식 여론 재판으로는 그 어떤 훌륭한 분도 총리가 되기 어렵다. 실제 역할은 대독 총리이면서 자격은 추기경급을 찾고 있다. 여야 합의가 있다면 심각한 도덕적인 흠결이 없는 한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보였다.

        정홍원 현 총리가 사의를 밝힌 지 두 달이 다 되었다. 그만큼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상 한국은 세월호 참사 이후 내적인 이유로도‘국가 개조’의 필요성이 절박했다. 여기에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역사의 퇴행과 군사 대국화 야욕을 더욱 구체화하면서 국가 개조에 대한 대외적인 이유도 층분해졌다. 지속적으로 일본의 만행 대상이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한국은 집안 싸움에만 넋이 나가 있어 보인다. 이제 집안 싸움은 그만 끝내고 일본의 만행에 당당히 맞설 수 있는 견고한 국가를 만드는데 힘써야 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적재적소의 요직 인사들을 찾아 철옹성 같은 대한민국의 정부 구조가 완성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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