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감동과 재미를 선사했던 이번 올림픽은 어느 때보다 명장면도, 스타도 많았다. 시상식을 보고 울었다는 사람이 꽤 많다. 잊지 못할 드라마처럼 보고 또 보고 싶은 장면들이 많다. 2위 러시아의 이반 스코브레프와 3위를 한 네덜란드의 스케이트 영웅 밥 데용이 갑자기 양쪽에서 1위 이승훈을 번쩍 들어올렸다. 가운데에서 두 선수의 무동을 탄 이승훈의 활짝 웃는 모습은 세계가 한국의 스피드 스케이팅을 인정하는 가슴 뭉클한 장면이었다. 철의 강심장을 가졌다는 김연아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못했던 프리스케이팅 클린 프로그램을 올림픽 무대에서 해냈다. 김연아가 세웠던 프리스케이팅 세계기록은 133.70점, 그러나 이번 올림픽 전광판에 새겨진 그녀의 점수는 150.06이었다. 아무리 완벽한 연기를 했다 해도, 자기 스스로도 믿기지 않는 점수였다. 이외에도 대한민국 스피드 스케이팅의 이승훈과 모태범, 쇼트트랙 이정수는 금메달을 딴 뒤 산뜻한 외모에 귀여운 말솜씨로 대한민국 청춘 남녀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여자 스피드 스케이팅 이상화는 ‘얼음 위의 신세경’이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인기녀로 급부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쇼트트랙만 떼어 두고 생각하면 분명 아쉬운 부분이 남는다. 미국에서는 영웅이기도 한 오노, 한국에서는 ‘최고의 밉상’으로 통하는 아폴로 안톤 오노 때문이다. 한국에서 8년째 이 타이틀을 지키고 있는 아폴로 안톤 오노는 이번에도 ‘더티 플레이’를 보여줬다. 1500m 준결승과 결승에서 손을 쓰고도 어부지리로 은메달을 따 이정수로부터 “시상대에 설 자격이 없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1000m에 이어 500m에서도 반칙을 하던 오노는 결국 500m 결승에서 캐나다 선수를 밀어 실격 당했다. 솔직히 기뻤다. 이 오노 선수를 보면서 필자는 처음으로 내 자리가 보잘것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로라도의 작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아무리 잘 나간다고 해도 미국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한인 신문사의 역량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필자가 권위 있는 뉴욕타임즈나 NBC 방송국의 편성국장 자리에 앉아 있었더라면 오노에 대한 울화를 조금이나마 삭힐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노 덕에 더욱 분발해야 하는 숙제를 안아 한편으로는 감사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보자. 한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여자 3,000m 계주의 어이없는 실격장면에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이번 사건은 2002 솔트 레이크 시티의 ‘김동성-오노 사건’과 묘하게 오버랩 된다. 당시 김동성은 1,000m 경기에서 1등으로 들어오고도 실격 처리되고, 금메달을 오노에게 내줬다. 태극기를 들고 빙판을 누비다가 망연자실해하는 모습도 닮아있다. 한국에 실격을 내린 주심은 호주의 제임스 휴이시였다. 바로 8년 전인 2002년 솔트 레이크 시티 올림픽에서 김동성에게 실격 판정을 내리고 ‘할리우드 액션’ 오노를 금메달리스트로 만든 그 심판이다. 악연의 연속이다. 솔트 레이크 시티 올림픽은 당시 김동성 사건을 비롯해 각 종목에서 심판의 부당한 판정 때문에 잇따라 문제가 불거지면서 역대 최악의 올림픽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바 있다. 이후 한국 쇼트트랙은 올림픽에서 계속된 심판의 편파 판정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을 해왔다. 하지만 8년 뒤, 그것도 같은 심판에게 똑같이 당하면서 한국은 또다시 뼈아픈 눈물을 떨궈야 했다.

얼마 전 미국 내 한 방송에서는 오노의 특집 영상물을 방영했다. 이번 대회 4개 메달을 포함해 동계 올림픽에서 모두 8개 메달을 따, 미국 신기록을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오노는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한 탓을 한국과 캐나다에 돌렸다. 자신이 해왔던 반칙과 눈속임은 생각지 않고 말이다. 하기야 따져보면 지금까지 오노의 금메달 옆에는 대부분 한국 선수가 있었다. 시원하게 금메달을 딴 적이 별로 없는 것을 감안한다면 그의 한국에 대한 감정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국력과 비례하는 심판들의 오심은 이해할 수도 없고, 한국이 이를 방어하기에는 아직까지 역부족이다. 아예 근소한 차이가 아니라 큰 차이로 결승선에 들어오는 길 밖에는 없을 것 같다. 특히 오노와 싸움에서는 말이다. 하여튼 이런 역경 속에서도 한국 선수단은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종합 5위의 역대 최고의 성적을 냈다. 멋지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선수들 파이팅 하길 바란다.


<편집국장 김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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