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인해 재외선거제도가 도입되었고, 이에 따라 해외에 일시 체류하는 국민들뿐만 아니라 영주권을 가진 국민들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투표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2016년에는 국가 주요 사안에 대해 국민이 직접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국민투표에까지 참여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재외국민의 경우 주민등록이 없어 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는데 이제는 이런 제한까지 없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해외동포를 상대로 한 참정권의 제한이 속속 풀리면서 전세계 한인사회는 한국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번 재보선 선거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로 희비(喜悲)가 갈렸다. 지난 30일 한국에서는 전국 15개 선거구에서 국회의원 재·보선 선거가 치러졌다. 그 결과 여당인 새누리당이 11곳에서 승리했다. 새누리당은 서울 동작 을과 수원 등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전체 9곳 중 한 곳만 빼고 모두 당선됐다. 새누리당의 예상 밖 압승이고 새정치연합의 참패다. 심지어 야당의 아성인 전남 순천·곡성에서도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50%에 가까운 득표율로 당선되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그의 당선은 철벽같던 지역주의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버린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할 만하다. 1988년 13대 총선 이후 광주 전남 지역에서 현 여권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 당선자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 초반만 해도 여당내 분위기는 암울했다. 여권은 세월호 사건의 짐을 벗지 못한 상태에서 이번 선거를 맞았다. 여기에 더해 안대희 총리 후보자에 이어 문창극 후보자까지 중도에 물러나고, 장관 후보자 두 명이 낙마하는 인사 파동까지 겹쳤다. 선거 종반에는 유병언 시신이 발견되면서 검찰과 경찰의 무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래서 스스로 3~4석만 건지면 다행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 결과는 야당인 새정치연합의 몰락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을까?

       새정치연합은 여권의 실책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면서 흠집내기에만 몰두했다. 국민은 공직 후보자의 잇단 낙마에 혀를 차면서도 무조건 여당을 끌어내리려는 야당의 행태에 고개를 저었다. 또, 국민들은 세월호 비극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야당의 태도에 대해서도 염증을 느꼈다. 야당은 유병언 시체를 과학적 근거도 없이 지속적으로 부정하면서, 정부를 무조건 불신하는 일부 세력에 편승해 재보선에서 몇 표 더 얻으려는 얄팍한 정치 상술의 모습까지 보였다. 새정치연합은 정의당과 서울 동작을, 수원 병·정 세 선거구에서 단일화라는 이름으로 ‘후보 사퇴 거래’까지 했지만 결국 두 곳에서 낙선했다. 선거만을 위한 정당간 후보 단일화는 유권자와 정당 정치에 대한 우롱이다. 정당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야권이 후보 단일화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면 차라리 하나의 당으로 합치는 게 당당한 길이다. 통상 재·보선은 정권을 중간평가하는 성격으로 대부분 야당이 크게 이겨왔지만,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여당이 아닌 야당을 심판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재·보선을 통해 우리는 몇가지 교훈을 얻었다. 첫번째, 야당의 후보 단일화라는 쇼는 이제 점차 효용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두번째,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당선돼 고질적 지역주의를 무너뜨리면서, 성심을 다하면 유권자가 응답한다는 평범하면서도 그 동안 잊혀졌던 진리를 알게 되었다. 세번째, 대안없이 무조건 반대하고 깎아내리는 야당의 비현실적 전략에 국민들은 이미 식상해졌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치의 희망 아이콘으로 불렸던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의 몰락 또한 시사하는 부분이 상당하다. 그는 이번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곧바로 사퇴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정치인 안철수의 실패라는 의미를 넘어‘안철수발 새정치 실험’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의미가 더 크다. 지난 대선 국면에서 부각된 ‘안철수 현상’은 지역주의 이익만 앞세워 갈등과 대립을 반복해 온 기성 정치권을 향해 국민이 꺼내 든 히든 카드였다. 그러나 정작 안 전 대표는 새정치 구호만 열심히 외쳤을 뿐 그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 번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는 올해 지방선거를 앞두고 신당 창당이 여의치 않고 자신의 지지율도 하락세를 보이자 ‘낡은 정치’와 타협까지 했다. 그가 그토록 청산 대상이라고 외쳤던 구(舊) 민주당과 합당한 게 이번 선거 패배 요인의 결정판이 아닐까 싶다. 또 그는 광주시장 선거와 광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자기 사람을 내리꽂는 ‘전략 공천’까지 했다. 세월호 참사 수습 같은 국가 중대사를 두고 말로만 ‘초당적 협조’를 약속했을 뿐 실제로 타협과 협상의 리더십도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나 ‘안철수 실험’이 일단 실패로 막을 내렸다고 해서 정치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요구까지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민은 지난 6월 지방선거와 이번 재보선을 통해 국민의 편에 서서 변화하지 않는 세력에게는 언제든지 퇴장 카드를 들이댈 것임을 보여줬다.

       앞으로 2016년 4월 20대 총선까지 20개월 동안에는 큰 선거가 없다. 박근혜 정부로선 가장 일을 많이 할 수 있고, 성과를 내야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수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안정된 정국을 바탕으로 국가 혁신과 경제 활성화가 너무나 절실했기 때문이다. 여당은 이번에 유권자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잘 새겨야 한다. 국민들은 한번 더 주어진 마지막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지켜볼 것이다. 해외동포들 또한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조국 대한민국을 세계 속의 일류국가로 성장시키는 원동력임을 명심하고, 한국 정치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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