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과 겸손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주 한국을 방문했다. 13억 가톨릭 신자들을 이끄는 교황의 방한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타종교인과 무종교인을 포함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기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한국을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에 도착한 직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일까. 교황청 기관지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오후 6시쯤 이탈리아 로마 치암피노 공항에 도착해, 준비된 헬기가 아닌 일반 자동차를 타고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에 들렀다. 교황은 대성전 내 ‘로마 백성의 구원’이라고 불리는 성모 마리아 상 앞에 한국의 한 소녀에게 받은 꽃다발을 바치고 감사기도를 올렸다. 한국을 떠나면서 꽃다발을 성모님께 드리겠다고 한 소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교황의 방문은 아시아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한다는 종교적 목적이 우선이지만 방한이 주는 울림은 종교의 울타리 안에서 그치지 않았다.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순교자 124인 시복(諡福)식에 비신자를 대거 포함한 100만 명이 운집한 배경도 그런 그를 더 가까이 보고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종교를 뛰어넘어 국민 모두가 그를 환영했으며, 교황을 취재하던 모든 언론인들도 시종일관 존경과 감사의 내용을 담았다. 그가 한국에 있는 동안에 모든 국민은 착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100만명이 넘게 모였지만 쓰레기까지 깨끗하게 치우며 자리를 떠나는 국민들의 모습은 분명 여느 때와는 달랐다.

       교황은 가톨릭의 최고지도자이면서 바티칸 시국의 원수(元首)다. 그만큼 세계 속의 위상과 영향력이 막중하다.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뒤로도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각별한 배려, 소탈하고 겸손한 자세 등과 함께 언행일치, 솔선수범의 리더십으로 세계적인 추앙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방한 직전에 교황은 주 바티칸 한국대사관의 환송식도 생략을 당부했고, 화동을 통한 꽃다발 증정 관례마저 “뜻은 고맙지만 굳이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며 고사했다고 한다. 방한 첫 미사를 14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에 앞서 주한 교황청대사관에서 환경미화원·시설관리인 등과 함께 봉헌한 것도 약자의 편에 서는 그의 평소 모습의 연장선이었다.

        ‘프란치스코 신드롬’이 확산된 것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국민 대다수의 가슴에 와닿았기 때문이다. 교황은 1등석 없는 한국행 전세 비행기에 직접 서류 가방을 들고 탔다. 서울에 도착해 공항에서 세월호 유족들을 소개받자 왼손을 가슴에 얹고 슬픈 표정으로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며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넸다. 또,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한 새터민, 낯선 땅에 와 어려운 삶을 사는 이주 노동자의 손을 잡았다. 출국 전의 마지막 행사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면서, 그는 일본군이 강제동원했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맨 앞자리에 앉게 하고 각별히 위로했다. 그 직전에 다른 종교의 지도자 12명을 만나 “함께 걸어가자”고 제안한 것도 그의 일관된 ‘화합’과 ‘소통’의 메시지로 읽힌다. 광화문광장에서 시복식을 마친 뒤 충북 음성의 꽃동네를 찾아 사지가 마비된 중증장애인 이마에 입맞추는 그의 모습을 두고 “마치 살아있는 성인(聖人)을 보는 듯하다”고 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가장 낮은 이들과 눈을 맞추고, 가장 약한 이들의 손을 잡는 그의 모습은‘감동’이었다.

       또한, 교황은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돈이 최고가 되는 세태를 직설화법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위세를 뽐내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건물, 최고급 명품과 고급 외제차를 자랑하는 사람들이 활개치고 있지만, 그 뒷면에서는 가난, 불안, 소외, 억압으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이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고 축원하면서, “막대한 부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를 경고했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할 주체는 바로 우리들이다. ‘파파 프란치스코’를 찬미한다고 해서 그가 우리에게 지적한 문제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가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타고 다녔던 경차 ‘쏘울’을 따라서 탄다고 해서 우리의 영혼이 곧바로 정화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의식있는 사람들이 연대하여 세상의 모순과 부딪치며 끈질기게 노력할 때 세상은 조금씩 바뀐다. 교황은 “공동의 선(善)을 위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자는 이기적”이라며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중립을 지켜야 하니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답하며 리본을 떼는 것을 거부했음을 기억하자.

       방한 기간에 그는 소탈하고 겸손한 자세, 소외되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위로, 진정한 소통과 공감, 그리고 희망의 리더십을 통해 참된 종교지도자상(像)을 보였다. 종교나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막론하고 그가 몸소 행동으로 일깨워준 가치를 모두 진지하게 되새겨야 할 때다. 자기 성찰의 계기로도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25년 만의 교황 방한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는 길이다. 교황의 방한 중 우리에게 보여준 손짓, 목소리, 표정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에 사랑과 겸손, 그리고 포용을 퍼뜨릴 씨앗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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