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의 <속삭임>

      산들바람이 불면 대지는 만물의 싹을 틔우고 이를 자라게 해 세상을 녹색의 낙원으로 만든다. 산들바람은 자연의 속삭임이다. 그 속삭임이 생명을 키운다. 어머니의 다정한 속삭임도 우리를 그렇게 자라게 한다. 온화한 목소리를 통해 전해져 오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은 편안해지고 영혼은 쑥쑥 자라난다.
쟝 프랑스와 밀레(Jean-Francois Millet, 1814-1875)의 <속삭임>은 그 아름다운 속삭임을 예쁘게 그린 그림이다. 작품 속에서 어머니와 아기는 서로를 쳐다보며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어머니의 옷차림으로 보아 그리 넉넉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아이를 향한 뜨거운 사랑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넘쳐나고 있다.
편안한 표정의 아이는 그 넉넉한 사랑을 마음껏 누리고 있다. 어머니의 사랑보다 아이에게 더 큰 축복은 없다. 가난하지만 마음만은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어머니와 아이는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행복을 즐기고 있다. 그들의 대화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게 퍼져 나가고 있다.
어머니의 산들바람같은 속삭임을 따라 우리의 가슴 속에 씨앗처럼 뿌려진 사랑은 우리가 평생 사용할 귀중한 생명의 에너지이다. 이 에너지가 있어 우리는 거친 태풍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울 수 있다. 비바람 속에서도 어머니의 다정한 사랑의 속삭임은 들을 수 있다. 어른이 돼도 이 속삭임만큼 그리운 게 없고, 이 사랑만큼 그리운 게 없다. 오늘도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의 속삭임이 산들바람처럼 스치고 있다.
옛날부터 사람들은 자연이나 대지를 어머니처럼 생각했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듯 자연과 대지는 갖가지 생물을 생겨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자연을 영어로는 mother nature라고 한다. 또 그리스 신화에서 묘사하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 여신이나 곡물과 수확의 여신인 데메테르 여신 또한 이러한 믿음을 반영하고 있기도 한다.

      19세기에 그려진 이 작품의 원래 제목은 <농부와 아이(Peasant and Child)>였다. 이 작품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을 사랑하고 농민을 즐겨 그려, ‘신과 성인이 등장하지 않는 종교화’를 그리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 밀레의 초창기 ‘화사양식(maniere fleurie)에 충실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1845년부터 1848년 사이의 작품에 나타나는 이 화사양식 화풍은 말 그대로 화려한 색채와 활달한 붓놀림을 사용한 작품을 일컫는다. 로코코(Rococo) 화가들의 ㅇ유행했던 그림의 화풍을 채택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당시 유행하던 그림들은 관능적이고 외설적인 벗은 여인 모습이나 사랑에 대한 신화 등에 관한 작은 크기의 소품이었기 때문이다. 밀레 역시 여러 점의 벗은 여인의 모습을 그렸지만, 이 작품에서는 순수한 어머니의 사랑을 묘사하기 위해 어깨만 살짝 드러나게 했다. 또 바르비종에 정착한 이후에 그린 작품보다 인물의 피부색이 보다 화사하며, 형태 역시 부서질 듯 부드럽게 표현한 것도 특징이다. 이에 대해 프랑스의 미술평론가인 알프레드 상시에(Alfred Sensier)를 비롯한 많은 비평가들은 밀레에 대한 또다른 매력을 찾은 것으로 생각해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화사양식’이라는 말도 상시에가 최초로 사용했다. 하지만 정작 밀레 자신은 이때 그린 작품들은 실수였다고 자책했다.
비록 작가 자신이 자부심을 가지지 못했던 시기에 제작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작품에서 우리는 밀레 특유의 특성을 찾아볼 수 있다. 우선 소재적인 측면에서, 그가 바르비종에서도 즐겨 그린 가난한 농부 어머니를 소재로 삼았으며, 비록 인물에 대한 색채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공간 표현을 위한 어슴푸레한 빛의 표현 역시 밀레가 주로 화폭에 담은 농촌 속 자연 풍경의 표현과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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