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위기(危機)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위기는 쉽게 해결되기도 하고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위기는 극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도 하고, 이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내 인생이 끝장날 것 같은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큰 위기라 할지라도 극복할 수만 있다면 그 위기는 또 다른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히스기야라는 왕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분열 왕국 시대에 남 유다를 통치했던 왕입니다. 그에게 전쟁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미 형제 국가인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라는 대 제국이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나라인 남 유다까지 집어 삼키기 위해 십팔만 오천명의 군대를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들어왔습니다. 이 절대위기 앞에서 신앙이 있고 경건했던 히스기야 왕도 처음에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의 보물과 심지어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에 입혀있던 금까지 벗겨서 앗수르 왕에게 바쳤습니다(열왕기하 18장). 그러나 앗수르 왕은 내물만 받아먹고 예루살렘을 향해 계속 진군해 들어왔습니다. 물질 공세를 통한 위기 극복이 실패로 돌아간 것입니다. 물질 공세는 진정한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이 아니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히스기야왕은 쳐들어오는 적군을 막아 내기 위해 진정한 위기 극복의 법칙들을 적용합니다.

       첫 번째로 그는 “더불어”(together)의 법칙을 적용했습니다. 먼저 히스기야 왕은 나라의 참모들과 그리고 군대지휘관들과 “더불어” 의논(역대하 32:3)했습니다. 위기는 개인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대게는 공동체적입니다. 그 위기와 역경이 개인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한 지체요 구성원이란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은 방법입니다. 그 절대왕권 시대에 히스기야 왕은 매사를 “더불어” 했습니다. 왕이 된 후에 백성들과 함께 유월절 절기를 지키는 일을 위해서도 온 회중과 “더불어” 의논(역대기하 30:2)합니다. 또한 이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명과 싸워야 하는 위기 앞에서도 혼자 전전긍긍하지 않고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합니다. 구약성경 전도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9-12)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났다고 합니다. “더불어” 위기를 극복하는 원리입니다.

       두 번째로 그는 방비(defense)의 법칙을 적용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백성들과 더불어 의논한 뒤 적을 막아 낼 방어 태세를 구축했습니다. 예수살렘성 밖의 적군들이 물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성 밖으로 나가는 물 근원을 막고, 허물어진 성벽을 보수하고, 망대를 높이 쌓고, 외성을 쌓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었습니다. 미리 대비하고 방비해야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것을 막아 내기가 쉽습니다. 미리 대비하지 못해서 당하는 위기는 때로는 치명적인 실패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래서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로 그는 집중(focus)의 법칙을 적용했습니다. 더불어 의논하고 예루살렘 성의 진지를 구축한 후에 히스기야 왕은 두려움에 사로 잡혀있는 백성들을 광장에 모으고 그들을 말로 위로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히스기야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안심시키기 위해 앗수르의 신과 이스라엘의 신 여호와 하나님을 대비시킵니다.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도우시고 대신하여 싸워주실 여호와 하나님께 집중하게 합니다. 집중하면 크게 보입니다. 십팔만 오천의 군대에 집중하면 패배가 크게 보이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 집중하면 그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승리가 크게 보입니다.

      얼마 전 이순신 장군을 영화화한 “명량”을 보면서 이순신 장군에게도 이 세 가지 법칙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했습니다. 대장선 위에서 혼자 외롭게 싸우는 것 같았지만 절대 위기의 순간에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화약을 실은 폭파선이 대장선에 접근하는 것을 뭍에서 옷을 흔들어 알려주는, 회오리 물살에 휘말린 대장선을 백성들이 갈고리고 끌어 내 주는) “더불어” 싸워 이기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일본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거북선을 만들고, 12척의 배를 수리하고, 전선을 탐방하는 모습 속에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장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군인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내고자 하는 집념이 있었습니다. 장군은 330척의 일본 배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자신에게 남아있는 12척의 배에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패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 집중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해전사에도 길이 남는 승리를 거두었고,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놓여있던 나라를 위기로부터 구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적의 대장선이 돌진하는 순간에 물에 회오리가 일 줄을 어떻게 알았느냐?”는 아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천행이다!”(by the grace of God!) 위기(危機)는 곧 기회(機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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