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 미국 시민들은 큰 슬픔에 빠지게 했던 일이 있었다. 친근한 이웃 아저씨 같은 국민 배우 로빈 월리엄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삶과 죽음의 모습이 너무 차이가 많이 난다. 나는 영화를 많이 보거나 잘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가 출연했던 영화를 몇 번 보았던 기억이 있다. 참 익살스럽고 재미있는 배우였다. 로빈 월리엄스에게 가장 많이 붙는 수식어는 ‘명 코미디 배우’라는 것이다. 그는 1997년 미국 잡지 ‘엔터테인먼트 위클리’가 선정한 ‘가장 웃기는 코미디언 50명’중 단연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코믹 연기의 정상에 올랐던 사람이다. ‘굿모닝 베트남’(1987년 작)에서 미국 라디오 DJ 에드리언 역할을 맡아 피투성이 전쟁에 지쳐버린 영혼들을 속사포 같은 수다와 조크로 다독이던 입담을 선보이기도 했다. ‘쥬만지’(1995년 작)와 ‘플러버’(1997년 작) 같은 코믹한 활극에서는 온 몸으로 가족 관객을 웃긴 그의 원맨쇼는 코믹 연기에 대한 천부적 재능을 확인하게 주기도 했다.

       그렇다고 로빈 월리엄스가 단순히 사람을 웃게만 만드는 코믹 배우는 아니었다. 그는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인물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다. 큰 키와 좋은 풍채로 사람을 압도하지도 않았다. 수수한 외모에 아담한 체격을 가졌다. 그러기에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인간의 많은 표정들을 담아 낼 수 있었다. 그의 연기 는 관객들의 마음에 긴 여운을 남겼다. 때론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드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심지어 코믹 연기라 할지라도 뭉클한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다. 관객들을 한참 웃게 만들었던 ‘미세스 다웃파이어’(1993년 작)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는 나도 아주 흥미롭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내와 별거하게 된 남편이 아이들을 그리워한 끝에 나이든 여성으로 분장을 한다. 그리고 자기 집에 가정부로 취직을 한다는 영화 줄거리는 전형적인 코믹 드라마이다. 하지만 한 자락만 벗겨보면 그렇게 쓸쓸한 이야기도 없다. 자기 가족에 대한 사랑을 아무리 떨쳐 버리려고 해도 떨칠 수 없는 한 인간의 고뇌가 들어 있다. 자식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렇게라도 가까이에 있고 싶었던 한 아빠의 눈물겨운 사랑이 묻어 나오는 것이다.

        그는 참 많은 사람을 웃겼고 감동을 준 배우이다. 그러기에 갑작스레 생을 마감한 그의 사망 소식에 수많은 시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할리우드의 ‘명성의 거리’에 위치한 로빈 월리엄스의 명패 인근에는 그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직후부터 팬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상태이다. 이들은 고인의 이름이 적힌 별 모양의 타일 위에 추모의 뜻을 담긴 초와 꽃을 수북이 쌓아 놓았다. 또한 생전에 고인이 환히 웃고 있던 잡지 표지 사진이나 슬픔의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적어 갖다 놓으면서 애도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사망한 후 한 주간만 해도 3천만 건이 넘는 트위터가 그에 대한 애도를 나타냈었다. 오바마 대통령 역시 트위터를 통해 “그는 대체 불가능한 배우였다”고 고인을 추모하기도 했다. 가족 휴가 중임에도 긴급 성명을 내고 “그는 모든 인간의 감성을 흔들었다.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었다. 월리엄스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의를 표한다”라고 했다. 영화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코미디 분야의 반짝이는 폭풍 같았다. 그가 떠났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코미디 스토어나 래프 팩토리 같은 로빈 월리엄스가 자주 찾아 공연했던 클럽들은 업소 앞 전광판에 ‘위대했던 코미디언 로빈 월리엄스여, 평안히 잠드시길’ ‘당신은 천국에서도 하나님을 웃기리라 믿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내걸면서 슬픔을 대신하고 있다.

       이렇게 만인을 즐겁게 만들고 많은 사랑을 받았건만 그의 내면은 전혀 다른 세계였던 것 같다.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심각한 우울증과 싸워왔다. 그 우울증을 이기지 위해 술을 마시면서 알코올 중독이 되기도 했다. 월리엄스는 지난 2006년 알코올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재활원에 머물렀던 적도 있다. 그러면서 술을 끊는 결단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우울증이 심화되면서 술을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재활원에 다시 들어가기로 일정까지 잡았지만 그 사이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그는 1951년 시카코에서 포드 자동차 회사 간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리 어려운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부모가 너무 바빠 가족을 돌보지 않는 관계로 외롭게 성장을 했다. 그 자신의 가정생활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몇 번의 이혼을 겪을 정도로 사실 그의 내면은 전혀 물기가 없는 메마른 사막이었다. 늘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같이 웃었다. 그리고는 아무 문제도 없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라고 추측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에 불과했다. 그는 맡은 역할에 충실한 연기자일 뿐이었다. 그의 진정한 삶은 따로 있었다. 그의 외롭고 슬픈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1990년대까지 활동하며 ‘미국 코미디의 황제’라는 말을 들었던 밥 호프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허름한 술집에서 깊은 시름에 잠겨 있는 사내에게 한 손님이 다가 갔다. “그렇게 사는 게 힘들면 밥 호프의 코미디를 보시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사내가 고개를 흔들며 “내가 바로 밥 호프요”라고 했다고 한다. 밥 호프 역시 온 국민들을 울리고 웃기는 재주를 가졌지만 정작 자신은 겉잡을 수 없는 외로움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속 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대상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연구가 있다. 지난 1985년 조사에서 미국인들은 자기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사람이 3명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하지만 20년 후인 2005년 조사에서는 그 숫자가 한 명으로 줄었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을 털어 놓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대답이 25%나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 중 넷 중에 한 사람은 철저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것도 9년 전 조사이니 지금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누구와도 연결고리가 없는 고립상태는 단순히 감정의 문제만이 아니다.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장기화하면 반사회적 행동이 나온다. 동시에 자살 충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사람은 누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월리엄스에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었다면 그가 이런 극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내 내면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그가 아무리 딸을 사랑한다고 해도 그에게 내 마음의 아픔과 고통을 그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자처럼 강하지도 않고 독수리처럼 빠르고 날쌔지도 않다. 하지만 약한 인간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 물론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과 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 스스로에게는 집단을 이룰 수 있는 힘 덕분일 것이다. 혼자 대처하는 대신 집단을 형성해 함께 사냥을 하고 함께 방어를 한 것이 생존비결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이다. 배가 고플 때 위에서 신호가 오는 것처럼 홀로 있을 때 외로움이라는 통증이 느껴지도록 되어 있다. 너와 나의 연대감은 밥만큼이나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많은 돈을 벌고 인간적 성취를 얻는 것도 필요하다. 사업을 크게 하고 자녀들에게 많은 것을 물려주는 것도 우리 인생의 목표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 모두 해야 할 몫이 있다. 가까이 있는 누군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이다. 그 마음의 문을 자주 두드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주변에 고립된 사람들이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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