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거인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다. 폭풍 직전으로 느껴지는 분위기 속의 구름이 아랫도리를 두를 정도로 몸집이 어마어마하다. 검은 하늘에 머리가 닿을 듯한 거인의 아래에는 엄청난 거인의 출현에 놀라 공포에 질린 사람들과 역마차, 소떼가 정신없이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는 아수라장 속에서, 전면에 무심히 서있는 노새 한 마리가 혼란 속에서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을 그린 스페인의 거장 프란치스코 고야가 이 노새를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노새는 스페인어로 바보 또는 얼간이를 표현한다. 일부에서는 이 노새가 당시 왕이었던 페르난도 7세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기도 한다.
주먹을 불끈 쥔 거인은 무섭고 잔인해 보인다. 거인은 도망가는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어 당장 사람들에게 해를 끼칠 것 같지는 않지만, 거인이 사람들 쪽으로 몸을 돌린다면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며 고야가 단순히 심심풀이로 이렇게 무서운 거인을 그린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거인을 당시 스페인에 쳐들어온 나폴레옹의 군대나 전쟁의 상징으로 해석하기도 했고, 백성을 괴롭힌 재상 고도이를 그린 것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반대로 거인이 군중을 뒤로 방위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거인이 스페인의 수호신이라고 보는 설도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여러 해석들 가운데 가장 그럴듯한 해석은 공포 그 자체를 그린 것이라는 해석이었다. 고야가 살던 당시 스페인은 매우 불안정하고 공포스러웠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던 고야의 상상력의 비약을 말해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서유럽에는 산업혁명이 일어나 나라마다 산업과 기술을 발달시키려 애를 썼다. 하지만 스페인 왕가와 지도층은 산업과 기술의 발달에는 관심이 없고 백성들을 수탈해 자기 배를 불리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상공인과 지식인, 젊은 귀족들은 개혁과 계몽주의의 확산에 열을 올렸으나 정부가 워낙 부패해 가망이 없었다.왕은 무능하고, 왕비는 제 욕심만 채우고, 정부는 학정을 일삼고, 급기야 외국 군대까지 쳐들어와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니 백성들은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무서웠다. 고야는 그런 스페인 민중의 고통과 공포를 이 거인의 모습에 담았다. 이 작품에서 그는 색깔의 얼룩과 붓 터치가 얼핏 보기에도 거칠어 보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다. 사람들이 정신없이 달아나고 있고, 그림 역시 조금도 지체할 여유가 없어 보인다. 고야는 등장인물들을 신경질적으로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처한 위기와 다급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09년에 이 그림이 고야의 작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논란이 제기되었다. 이 작품을 현재 소장하고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는 7개월간의 조사 결과, <거인>이 사실은 고야의 조수인 아센시오 훌리아(Asensio Julia)의 것임을 추정하는 결론을 내렸다. 프라도 미술관에 78년간 걸려있던 <거인>이 고야 풍의 그림이지만 고야가 그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프라도 미술관은 2008년에 작품 한귀퉁이에 있는 A. J.라는 이니셜 때문에 <거인>이 고야의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정밀 분석에 들어간 바 있다. <거인>은 1812년에 고야의 재산목록에 기재되어 있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이 작품의 질을 봤을 때 그림을 그리는데 고야가 참여했을 것이라고 여전히 믿고 있다. 영국의 미술사학자 니겔 글렌디닝은 “아센시오 훌리아가 이 작품을 그렸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대담하다”고 소견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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