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추수감사절부터 사실상 연말연시를 준비하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벌써부터 연말연시를 어떻게 보낼까 계획을 세운다. 지인들과 만나 송년회를 한다거나 가족과 여행을 떠난다던가 하는 계획은 아주 칭찬할 만하다. 하지만 산으로 올라가서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꽉 차 있다면 문제가 있다. 콜로라도 한인 커뮤니티에서 ‘산에 간다’는 말은 곧 ‘카지노에 도박하러 간다’는 말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말 그대로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러 간다는 뜻이라면 그것은 권장할 일임을 분명히 해둔다.
얼마 전 치러졌던 중간선거에서 오로라시에 경마 도박장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상정됐었다. 법안 지지자들은 여기에서 나온 수익금의 일부를 교육세로 납부하겠다는 감언이설로 유권자들을 현혹했지만 먹혀 들지 못했다. 메트로 덴버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블랙 호크와 센트럴 시티에 도박장을 허용해 줬으니 더 이상은 콜로라도에 유해한 장소가 들어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유권자들의 의지가 표명된 셈이다. 교육과 관련해서는 웬만한 세금 인상도 너그럽게 승인하는 과거의 주민투표 전례를 들어 은근슬쩍 수익금 일부를 교육에 사용하겠다는 표면적 사탕발림을 제시했지만, 도박의 폐단을 인지하고 있는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장사가 안돼 사는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경기가 조금씩 나아지는 요즘은 돈이 조금 벌리니까 재미삼아, 라는 이유로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잦아졌다. 필자의 주변을 둘러봐도 전에는 한 두번 갔다가 이제는 단골이 된 사람들이 늘었다. 도박에 중독된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중독 과정은 대략 이랬다. 재미 삼아 도박을 한번 했다가 우연히 대박을 경험한다. 짜릿한 흥분이 느껴진다. 같은 흥분을 얻기 위해 도박 시간이 점점 늘고 배팅 액수도 차차 커진다. 그러다가 이제는 도박 사실을 주변에 숨기기 시작한다. 빚이 늘어나면서 가족들에게 무관심해진다. 어제 잃었으니 오늘은 딸 것이라고 확신한다. 따고 나면 어제 땄으니 오늘도 딸 것이라고 다른 계산을 한다. 과거 크게 땄던 경험만 기억하고 그 쾌감을 잊지 못한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초조하고 불안해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다. 이 증상을 견디기 어려워 또 도박장을 찾는데 이쯤 되면 스스로 도박을 그만두기 힘든 수준에 이르게 된다.
 지금 도박 중독으로 블랙 호크나 센트럴 시티에 살다시피 하는 한인들의 인구가 족히 2천명이 된다고 한다. 심각한 수준이다. 카지노 사업이 날로 번창하는 이유에 한인들의 협조가 다분히 있다는 것은 씁쓸한 현실이다. 일단 100달러만 주머니에 있어도 무조건 그 날은 산에 올라가는 날이라고 정하고, 오후 스케줄을 아예 제쳐 버렸던 사람이 있었다. 가지고 있던 모텔, 집을 홀랑 날렸고, 타고 다니던 자동차의 페이먼트를 내지 못해 은행에서 가져갔다. 또, 지난 20여년 동안 집보다 도박장에서 밤을 샌 날이 많았던 한 남자는 결국 아내와 아이들에게 외면당하고, 이혼을 하게 됐다. 그는 아직도 카지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노부모의 신용카드를 훔치고, 시계, 반지, 카메라를 저당잡혀 가면서 카지노를 전전하다가 이제는 아예 알코올 중독자까지 되어버렸다.

      올해만 해도 여러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인터넷 도박사이트와 관련된 광고 의뢰 문의였다. 그쪽에서 광고 가격을 물어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신문지면에 실리는 광고주들의 라이센스 유무나 인간성, 그리고 정직성 등을 일일이 조사해서 광고를 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눈에 떡하니 보이는 사행성 조장 광고를 싣기가 영 찜찜했다. 그래서 다시 연락 온 도박 사이트 회사에 광고를 싣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그쪽에서는 자신들은 합법적인 사이트라고 강조했고, 타주에 있는 일간 신문들도 광고를 받아주었다면서, 우리 포커스가 광고를 받지 않는 타당한 이유를 들어달라고 다그쳤다. 그래서 필자는 그냥 ‘내 맘’이라고 말하고 끊었다. 그 뒤 한 번 더 연락이 왔다. 인터넷 웹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언론사가 덴버에는 포커스밖에 없기 때문에 웹사이트에라도 광고를 실어달라고 했다. 광고료도 깎지 않고 더 낼 수도 있다며 말이다. 하지만 그때도 필자는 거절했다. 다른 이유는 없다. 단지 도박 때문에 망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봤고, 신문광고로 인해 심약한 도박 중독자들이 혹여 발동이 걸릴까 염려스러웠을 뿐이다.
 온라인 쪽으로 급속히 이동중인 불법 도박은‘한국이 왕국’으로 불릴 만큼 만연해 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만 연간 13조∼39조 원으로, 합법인 스포츠 토토 시장 규모인 2조 원에 비하면 20배 규모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한 온라인 도박은 24시간 베팅에, 베팅 상한액도 제한이 없는데다 익명성이 보장돼 중독성과 후유증은 더 심각하다. 더욱이 베팅 관리도 대포통장으로 이뤄져 적발이 쉽지 않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한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오로라시에 도박장 건립이 무산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본인 스스로 그만 두지 못한다면 제삼자에 의한 어떠한 제재도 먹혀 들지 않기 때문이다. 더 이상 가족에게 의미 없는 당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당신이 되기 전에 그만 두어야 한다. 추수감사절을 기점으로 연말연시 연휴에 돌입한다. 벌써부터 산에 올라가려고 마음먹고 있는 당신, 건설적인 방향으로 노선을 바꾸길 바란다. 혹여, 지금 도박에 빠져 있다면 진정 자신의 어릴 적 꿈이 도박꾼이었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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