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같은 곳을 보면서 다른 생각을 한다. 좋은 식당에서 데이트를 하면서 남자는 프로포즈를 할 순간을 생각하고, 여자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다짐하며 어떻게 헤어질지 고민한다. 햄버거 가게에서 두 친구는 햄버거를 맛있게 먹고 있다. 서로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지만 정작 속마음은 다를 수 있다. 한 명은 아주 만족하며 먹고 있지만 다른 한 명은 피자가 먹고 싶지만 너 땜에 그냥 먹어주는 것이라면서 못내 참고 먹는다.

     부부는 한 이불을 덮으며 평생 행복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결혼을 한다. 하지만 정작 부부는 한이불을 덮고도 아내는 내일 아침 반찬 걱정을, 남편은 신입사원인 미스 김을 떠올리면 잠을 청한다. 동상이몽이다. 반란을 일으키려는 세력 중에는 반란을 통해 개혁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사람도 있고, 복수를 하려는 사람, 혹은 개인적인 부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내부고발로 자기만 피해갈 생각을 하는 자도 있다. 아니면, 잘 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무조건 흠집만 내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개혁이라는 하나의 목표 아래 참으로 많은 꾀가 오간다.

     한 부동산 업자에게 계속 식사를 같이 하자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며칠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그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해 아주 당당한 어조로 ‘밥 한번 먹어야지’하면서 식사 요청을 한다. 또 얼마 있다가는 부동산 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화장실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현관문이 삐걱거린다’는 둥 불만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또다시 저녁을 먹자고 한다. 술도 한잔 사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그는 얼마전에 이 부동산 업자를 통해 3만달러짜리 콘도를 구입했다. 그가 부동산 업자에게 그토록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래서 이 바이어는 부동산 업자에게 대단한 은혜를 베푼 것처럼 평생 밥을 얻어 먹을 심산인 모양이다. 하지만 부동산 업자의 생각은 다르다. 3만 달러짜리 매매를 성사시키려면 100만 달러짜리 집을 팔 때와 똑같은 과정을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수익은 적다. 그다지 타산이 맞는 거래가 아닌 셈이다. 그런데다 바이어의 지속적인 고자세로 인해 클로징을 하기도 전에 질려버렸다. 한 사람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생각하지만, 또다른 사람은 득보다 실이 많은 거래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은 시시때때로 책을 사겠다고 돈을 받아간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책값, 학원비, 체육복값, 학용품비 등을 계속 요구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요구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부모들은 열심히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에게 흡족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책값을 옷이나 게임기, 연애 비용으로 사용한 경험이 한번쯤은 있을 듯하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부모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게 되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갑상선 질환을 앓고 있던 한 남성이 있었다. 독한 약물 치료를 계속했지만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실명의 위기가 찾아오면서 눈알이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몸 또한 약 부작용으로 인해 부어 있었다. 그는 튀어나온 눈 때문에 안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멋을 내기 위해 안경알 없는 안경을 썼고, 퉁퉁 부은 그의 몸을 보고 심신이 편해서 살까지 찐 것이라며 단정지어 버렸다.

     외식을 자주 하는 어떤 사람은 바쁜 점심 시간마다 식당에서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반찬이 덜 나왔다, 밥이 적다, 국이 짜다, 이렇게 자주 오는데 서비스는 없느냐, 웨이츄레스를 세번이나 불렀는데 안 왔다, 김치가 너무 시었다’면서 웨이츄레스를 불러 세워 일일이 불만을 늘어놓는다.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불편할 정도로 웨이츄레스에게 타박을 준다. 그는 자주 식당에 온다는 이유로, 마치 자신이 그 식당을 먹여 살린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혹은 손님은 왕이라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식당 입장에서는 이런 손님은 더이상 오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쯤은 그 사람도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다.

     콜로라도에서도 간간이 대외적인 행사가 있다. 총영사관에서, 혹은 한국 정부에서, 아니면 전미 무슨무슨 협회 소속의 사람들이 덴버를 방문할 때가 있다. 이때 외부 인사들이야 당연히 그 지역의 단체장을 우선적으로 만남의 대상으로 선정한다. 그리고 간담회를 열어 방문한 목적에 대해 설명하면서 건설적인 얘기를 이어나간다. 이런 간담회를 참석하다 보면 연설 내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제대로 일하지 않고 이름만 내 걸고 있는 협회에게 무엇을 호소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실천을 기약할 수 없는 헛발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름 단체장이라며, 동포사회를 대표한다는 생각으로 참석한다. 하지만 교민들은 이미 행사 때만 나타나 사진만 찍고 가는 단체장들을 자신들의 대표로 생각안한지 오래일지 모른다.  이처럼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보면 희로애락은 주관적인 인식에 달린 것이 확실하다. 아름다운 장미꽃에 하필이면 가시가 돋았을까 하면서 가시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시에서 저토록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어났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가시가 돋보일 수 있다.  고 법정 스님은 ‘자기 나름의 이해’는 곧 오해의 발판이라고 했다. 2015년도 달력도 한장밖에 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되돌아보면서 자기 마음대로 이해한 부분이 없었는지, 그래서 그 이해가 오해로 남은 것은 아닌지 모두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김현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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