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미국으로 이민 온 지 딱 12년이 되었다. 미국에 오기 위해 필자와 남편은 종로구에 위치한 미국대사관에서 인터뷰를 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2001년 9월12일이었다. 지난 밤에 다려놓은 셔츠와 자켓을 차려 입고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미대사관 앞에서 섰다. 그런데 9.11사태로 인해 대사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5번의 서면 인터뷰에서 떨어졌다. 필자는 야릇한 도전의식에 휩싸여 여섯번째 비자신청 서류를 보냈고, 그제서야 미국 입국 비자를 받았다. 이렇게 미국에 들여보내달라고 구걸을 하면서까지 미국에 간다는 것이 참으로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오직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목표밖에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어렵게 미국에 들어와서도 참 많은 고생을 했다. 매일 버스를 3번이나 갈아타면서 학교를 다녔다. 하숙 집에서 조금만 늦게 나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지각을 했다. 학교까지 가려면 1시간 이상을 버스를 타야 했는데, 미국은 한국과 달리 장애인들이 버스를 많이 이용해 정거장마다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시간이 흘렀다. 버스 앞에 자전거를 매다는 승객도 많아 아까운 아침시간을 버스에서 허비할 때가 다반사였다. 마트에 들러 장이라도 본 날이면 양손에 비닐봉투를 가득 들고 한참을 걸어서 집까지 와야 했다. 이것저것 사야 할 것도 많은데, 무게를 생각하면 집까지 들고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필자는 ‘고물 자동차라도 한대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들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떠나던 날, 필자의 언니가 공항으로 배웅을 나오면서 작은 바가지 한 개와 플라스틱 컵을 한 개 들고 왔다. 언니는 “나중에 미국 가서 새로 사더라도 당장 쌀 씻을 바가지와 물이라도 마실 컵이 필요하다”며 모양새 빠지는 바가지와 컵을 기어코 이민 가방 안에 쑤셔 넣어주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미국에 도착하면 예쁘고 세련된 살림살이를 사게 될 텐데 귀찮게 저런 물건들을 꼭 가져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미국의 현실은 필자가  꿈꾸던 그것과는 한참 동떨어졌다. 첫 아이를 낳은 후에도 럭셔리한 미국 생활은 여전히 남의 이야기였다. 방1칸짜리 아파트는 아기 물건들까지 더해져 발 디딜 틈도 없는 공간이 되었다. 산후 몸조리를 해주러 온 친정 엄마는 잘 방이 없어 거실 한 켠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결국 엄마는 제대로 된 방에서 잠 한번 자보지 못한 채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때 필자는 “방이 2칸만 있었어도 좋았을텐데…” 하는 또다른 바람을 가졌다.

     그러나 그때의 꿈과 바람들은 이제 현실에 맞게 탈바꿈되었다. 미국에 와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꿈은 생활전선에 밀려 어디론가 사라졌고, 중고차만이라도 사고 싶었던 열망은 새 차뿐 아니라 자그마한 보트까지 한 척 사기에 이르렀다. 방 2칸짜리의 집을 꿈꾸며 살았지만 지금은 화장실이 4개나 되는 집에 살면서 때론 청소하기도 귀찮다. 뒤돌아보면 지금에 오기까지 참으로 힘든 일이 많았다. 큰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심장이 안 좋아서 아동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정신이 아득한 상태로 기도만 할 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밤 12시까지 주요소에서 일을 했고, 필자는 차가 없어 버스를 타고 산부인과 정기검진을 받으러 다녀야했다. 포커스 신문사를 창간하고 재정난으로 1년 만에 집을 숏세일로 처분할 수 밖에 없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과다출혈로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이처럼 힘들고 어렵기만 한 이민생활이라면 차라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며 살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내일을 향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절망과 희망을 오간 필자의 지난 10년이었다. 

    2014년에도 지난 10년 동안 필자에게 일어났던 일에 버금갈 정도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세계적으로는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해 지금까지 7천여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말레이시아 항공기가 인도해 상공에서 2백여명이 넘는 승객들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또, 보코하람과 IS 같은 이슬람 무장단체들의 끊임없는 테러 활동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 역시 세월호 참사, 경주 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고양 시외버스 종합 터미널 화재, 판교 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 등 잇따른 대형사고로 무고한 인명피해가 많았다. 콜로라도는 마리화나 합법화로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올 한해 덴버 한인타운은 지난해에 비해 경기도 나아졌고, 한국영화와 다양한 문화행사를 자주 접할 수 있었으며, 한인회 및 여러 한인 단체들이 새로운 활동 방향을 제시한 긍정적인 한 해였다고 평가된다. 고진감래라고 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있었기에 오늘의 성과가 더욱 값진 것이다. 올 한해 좋았던 일, 다행스러웠던 일들만 돌아보자. 희망이 보일 것이다. 가족들 큰 사고나 큰 병 없이 무탈하게 지냈음을 감사하고, 아이들 학교 착실하게 다니는 것에 감사하고, 가족들 굶기지 않을 정도의 경제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자. 이도 저도 아니면 이 정도라도 버틸 수 있게 해준 자신의 의지를 칭찬하고 다독여 주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자.
동포 여러분, 올 한해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저작권자 © 주간포커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