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10대 소년이 이슬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 스스로 시리아로 들어갔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한국이 발칵 뒤집혔다. 터키의 시리아 접경에서 행방불명된 김모 군(18)이 자발적으로 IS에 가담한 정황이 점점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아 접경 지역인 킬리스에서 실종된 김 군은 실종 하루 전날과, 호텔에서 나와서 종적을 감춘 지 5시간 뒤에 터키의 한 통신사에 가입된 누군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 김 군의 트위터에는“이 나라를 떠나 새 삶을 살고 싶다”는 글을 쓴 흔적도 발견됐다. 경찰은 이와 같은 정황을 근거로 “납치됐을 가능성은 없다”고 결론 내렸다. 이에 수사 당국은 김 군이 실종되거나 우연히 IS지역으로 월경하지 않은 사실이 명확한 만큼 김 군의 신분을 단순 실종자에서 용의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

   정확한 사실 관계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김 군이 IS에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이유가 ‘여자가 싫어서…’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자신의 트위터에 “페미니스트가 싫어서”라는 글을 올렸고, 지난해 10월에는 “지금의 시대는 남자가 차별을 받는 시대다”라며 “페미니스트가 싫다. 그래서 IS가 좋다”는 글을 남겼다. 또 김 군은 “어떻게 ISIS(IS의 전 명칭)에 합류해야 하는지 알고 싶다. 나는 ISIS에 합류하고 싶다”는 글을 한국어와 아랍어로 각각 올리면서 더 적극적으로 IS에 대한 관심을 표명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팔로잉하는 것에 그치다가 IS 조직원들이 깃발이나 무기를 들고 있는 사진을 집중적으로 리트윗(재전송)하기 시작했다. 결국 김 군은 지난 8일 부모에게 “터키에 있는 친구 하산을 만나러 7박8일 여행을 가겠다”며 이스탄불로 출국했고, 시리아 접경지에서 IS 대원과 합류해 시리아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세계적으로 IS의 테러행위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10대 소년의 이런 행보는 놀라울 따름이다. 종교적인 문제 때문도 아니고, 단지 한국 사회에 대한 비난과 주변 상황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IS에 가담했다면 더욱 그렇다. 김 군으로 인해 한국 또한 테러의 가능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문제가 함께 제기되고 있다. IS에서 훈련을 받고 돌아온다면 더욱 큰 일이다. 최근 프랑스 테러의 경우, IS에서 훈련받고 돌아온 귀환자에 의해 자행됐다. 지난해 9월 포로로 잡힌 한 IS 대원은 한국인 대원이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다. 최근 미 국무부는 IS에 가담한 외국인이 90여 개국 1만8000여명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엔 이슬람 광신주의자들도 있지만 사회에서 좌절한 일부 젊은이들이 도피처로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테러의 최종 목표는 세계에 충격을 줌으로써 IS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을 떠올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미군 기지가 있으며, 지리적으로 동양이지만 서방 가치를 적극 수용한 선진국이고, 테러 대비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1990년대 알카에다 3인자였던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가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납치, 미군 기지를 공격하려던 계획을 세우고 조직원을 한국에 침투시켰다가 적발된 사례가 있다. 게다가 북한과의 연계 가능성도 우려된다. 설마 한국에서 테러가 일어나겠느냐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무작정 배제할 수만도 없는 정황들이다. 이쯤되면 한국 정부는 국회에 방치해 둔 테러활동 법안을 한시라도 빨리 제정해 범국가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한국 소년의 IS행 정황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한결같이 ‘부모가 누구냐’라는 말부터 시작하게 된다. 김 군의 실제 IS 가담 여부를 떠나서 그가 사용했던 SNS 속의 대화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김 군은 교내 따돌림을 당한 이후 중학교를 자퇴하고 집에서 지냈다. 그러면서 사회와 담을 쌓고 SNS 즉 소셜 네트워크에 빠져버렸다. 아직 10대인 소년이기에 부모의 역할이 더욱 아쉽다.
사실 필자도 아이들이 어떤 소셜 네트워크를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페이스북과 유튜브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 컴퓨터 게임들 또한 대화를 하면서 진행되는 것이어서 더욱 놀랬다. 얼마 전 작은 아들이 자신의 게임에서 여자친구를 만나고, 아기를 낳고,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산다고 했다. 고작 7살짜리의 입에서 나온 얘기치고는 너무 성숙된 스토리였다. 또 한번은 큰 아들은 장난삼아 자신의 인스타그램(온라인 사진 공유 소셜 네트워킹 앱)에 동생이 코를 파는 사진을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 밑에는‘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하다’는 댓글이 달리면서 둘째 아들에 대한 조롱이 즐비했다. 상처받은 작은 아들이 울면서 필자에게 고자질하기 전까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요즘 대부분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시간을 보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자녀들의 소셜 네트워크 라이프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다.
김 군이 내 아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이곳 미국에서는 영어를 구사할 줄 모르는 한인 부모들이 많기 때문에 갈수록 자녀와의 소통 부재 문제가 두드러진다. 여기에 공통 관심사마저 사라진다면 말 그대로 동거인일 뿐 가족이 아니다. 부모의 사랑이란 자녀를 무조건 믿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아낌없는 사랑은 주되 냉철하게 자녀의 주변 환경, 친구관계, 학교 생활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할 필요가 있다. 자아와 가치관이 형성되는 민감한 중고등학교 시점은 삐삐도 없었고, 같이 놀고 싶은 친구가 있으면 한참을 걸어 친구집 대문까지 찾아갔던 우리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 시절 난 안 그랬는데 라는 주장은 아이들에게 억측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나의 과거에 그들을 맞출 수 없다면 내가 현재에 맞출 수 밖에 없다. 앞으로로 계속 인터넷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상 내 자녀에게 좀 더 엄격한 간섭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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