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땅콩 회항’은‘돈과 지위로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그리고 인간의 자존심을 무릎 꿇린 사건’이라는 것이 법원의 첫 판단이다. 지난주 서울서부지법 형사12부는 헌법 제10조 명문의 메타기본권인‘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잣대로 조 전 부사장의 항공보안법 항공기 항로변경·안전운항 저해, 폭행, 형법 강요·업무방해 등 4건의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실형 1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1건인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부분은 국토교통부의 불충분한 조사 탓이라는 이유로 무죄로 결론지어졌다. 지난해 12월5일 미국 뉴욕발 대한항공 여객기를 램프로 회항시킨 조현아의‘갑(甲)질’은 세계적 공분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이 재판은 항공보안법 제42조 항로변경죄가 적용된 첫 사례가 되었다. 항로변경죄의 법정형은 벌금 없이 1년 이상 10년 이하 징역만 규정하고 있다. 실형 1년은 그 죄만의 최저형량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피고의 죄질과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는 조 전 부사장을 질책하면서도, 초범이고 또 대항항공이 관련 피해자의 정상 근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죄질과 문책의 균형을 잡아 실형과 법정 최저형량을 교배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번 땅콩회항에 관련된 재판부의 경고가 기업 일반으로 하여금 경영문화를 되돌아보고 전근대적 구태를 일신하는 일대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조현아에 이어 최근 갑질 모녀도 유명세를 탔다. 일명 백화점 갑질모녀다. 주차요원이 그들의 차를 향해 허공에 주먹질을 했다는 이유로 주차요원을 무릎 꿇게 한 사건이다. 모녀가 주차요원에게 함부로 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백화점에서 7백만원이라는 돈을 썼기 때문이다. 내가 이 백화점에서 돈을 썼으니 주차요원 따위한테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는 심보에서 비롯된 행동인 셈이다. 이처럼 최근 연이은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회항, 백화점 VIP 모녀 사건 등으로‘갑질’에 대한 논란의 불씨가 점화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 전부터 ‘갑을 공화국’에 살고 있었다. 과거에는 차별이라는 이름으로, 현재는 갑질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조현아 전 부사장은 땅콩 서비스 문제로 사무장과 승무원들을 불러놓고 기내에서 소리를 지르고 욕설까지 함으로써 직원들에게 모멸감을 주었고, 탑승교를 떠난 비행기를 되돌리도록 하는 불법까지 저질렀다. 이런 행태는 조선시대 양반가의 안방마님이 화가 나서 노비들에게 함부로 하는 것과 모양새가 많이 닮았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재벌 등 우리 사회의 힘 있는 곳에서 너무도 자주 일어난다. 신분제적 ‘갑질’에 가까운 이런 행태는 과거의 양반이라는 신분 대신 최근에는 경제력(부자)이라는 새로운 신분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되풀이되고 있다. 조현아 전 부사장처럼‘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가의 자녀들과 노동자나 서민 계층의 자녀들은 애초부터 엄청난 불평등과 격차를 가지고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조선시대의 양반가 자녀와 노비의 자녀에게는 불평등이‘신분’에 의해 대물림되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새로운 신분인‘경제력’이 상속되고 있다.
 
   갑을관계에서의‘갑질’은 어떤 행동을 뜻하는 접미사인‘질’을 붙여 만든 말로,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이다. 널리 알려진 갑질은 대략 이런 것이다.“개인 역량과 조직의 힘을 혼동한다. 한마디로 자신이 잘난 줄 안다. 조직의 이익보다는 사사로운 개인의 이익을 도모한다. 을을 하인 부리듯이 대하며, 을이라면 손윗사람에게도 반말한다. 자신의 과오를 을에게 떠넘긴다. 배경에 대한 설명 없이 무조건 따르기만을 강제한다. 부탁할 때는 비굴하게 굴기도 하지만 도와줄 때는 끊는다.” 10켤레가 넘는 신발을 신어보고 자신의 못난 발을 탓하기보다 신발을 늦게 가져온다며 되려 점원에게 신경질을 내는 갑질 고객, 런치 스페셜 1인분 시켜놓고 다섯번이나 반찬 리필을 요청하면서도 손님은 왕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갑질 고객, 겨우 집 한 채 거래한 부동산 브로커에게 술 값 낼 것을 요구하거나, 혹은 음주로 대리기사가 필요할 때마다 시시콜콜 불러내는 갑질 바이어, 2달러에 셔츠 다림질해 주는 세탁소를 찾아서 셔츠 천이 얇아진 것 같다며 생떼를 쓰는 갑질 고객, 이사하는 날에는 직원들이 당연히 출동해야한다며 부담감까지 팍팍 안겨주는 갑질 사장 등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갑질의 주인공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오래 전부터 갑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을의 자리에 서면 가급적 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다. 어려서부터 갑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고, 을은 늘 약하고 가련한 존재로 표현되어왔다. 힘과 능력, 권한이‘센’ 사람은 약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했고‘약한’ 사람은 세지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갑으로만 존재할 수는 없고, 을로만 사는 사람도 없다. 사회가 발전될수록 사람끼리의 관계도 그만큼 복잡해진다. 회사에서 신입사원으로서 서열상 가장 아래에 있지만 납품업체와의 관계에서는 막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갑’일 수 있다. 내 친구의 어머니는 40년 가까이 시집살이를 해왔음에도 할머니에게는 여전히 순종하는 을이다. 동시에 며느리에게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인 갑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정치인이나 대기업의 회장님도 집에서는 아내나 자녀, 혹은 부모에게는 한없이 약한 을일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나 갑인 동시에 을일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마냥 갑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갑이 되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에 기본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특히 비즈니스 세계에서 올바르지 못한 갑이 끼치는 해악은 이루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갑이 되었을 때는‘인간적’이며‘도덕적’인 관계를 우선시해야 한다. 영원한 갑은 없다. 타인이 진심을 가지고 자신을 높여줄 때 진정한 갑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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