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카톨릭 신부님이 쓴 ‘상처와 용서’라는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도시에 경쟁관계에 있는 상인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어떻게 하면 상대방을 망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했습니다. 보다 못한 하나님이 천사를 내려 보냈습니다.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고 내려온 천사는 먼저 한 상인을 찾아가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내릴 것이요. 그대가 재물을 원하면 재물을, 장수를 원하면 장수를, 자녀를 원하면 자녀를 주실 것이요. 그러나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대가 무엇을 원하든 그대의 경쟁자는 두 배를 얻게 될 것이요. 즉 그대가 금화 10개를 원한다면 상대는 금화 20개를 얻게 될 것이요.” 천사의 말을 들은 이 상인이 한참 궁리를 하더니 “제가 무엇을 원하든지 다 이루어진다는 말이지요?” 천사가 그렇다고 하자 상인이 크게 한숨을 내 쉰 다음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제 한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

   이 이야기는 증오를 품고 있는 사람이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용서를 해야 하는 일도,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도 우리 같은 범인들의 입장에서는 모두 쉽지가 않습니다. 용서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용서가 안 되는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은 늘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백 가지를 잘못했다면 나는 하나님 앞에서 수천 가지를 잘못한 사람일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나를 예수님은 완벽하게 용서해 주셨는데도 말입니다. 또한 용서를 구해야 하는 입장에서의 문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뉘우침과 잘못에 대한 고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에 상영되었던 이창동 감독의 ‘밀양’이라는 영화는 기독교인들의 이런 용서에 대한 이중성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사랑과 관용을 외치지만 속으로는 용서하지 않고 보복의 충동 속에 살아가는 모습과,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용서를 말하면서도 정작 피해자에게는 진정한 회개나 용서를 구하는 사과 한마디 없는 말없는 살인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용서의 이중성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크림빵 뺑소니’라고 일컬어진 사건으로 인해 온 나라가 한바탕 소동이 있었습니다. 임신한 아내를 위해 빵을 사서 봉지에 들고 늦은 새벽시간에 귀가를 하던 한 남편이 차에 치었고 운전자는 그대로 뺑소니를 쳤습니다. 19일간이나 숨어 지내던 뺑소니 운전자는 수사가 좁혀오자 아내의 설득에 못 이겨 자수를 했습니다. 아들을 죽인 운전자가 자수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피해자의 아버지가 경찰서 유치장에 갇혀있는 가해자를 위로하러 가는 중에 기자들이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잡히지 않고 자수해 줘서 고맙고 잘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 사람도 한 가정의 가장인데... 누구보다도 힘든 상황에 있다고 생각한다. 진정으로 위로하러 왔다.”라고 말하며 기꺼이 용서의 손을 내미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가해자를 만나고 경찰의 수사 브리핑을 듣고 나온 아버지는 하루 전과는 달리 기자들을 향해 가해자를 질타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진짜 잘못했으면 솔직했으면 좋겠다. 제발 진정으로 뉘우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이는 가해 운전자가 자수 후에도 뺑소니를 한 이유에 대하여 변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고 당시에는 사람을 친 줄 몰랐다고 변명하는 가해자를 향해 아버지는 “원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기꺼이 용서할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거듭 밝힙니다. 그러면서 “제발 진솔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합니다.

   이렇듯 용서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마음과 기꺼이 용서하고자 하는 두 마음이 서로 만날 때 아름다운 용서의 기적은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선생님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3-14) 바로 이 ‘서로, 피차의 의식’이 필요합니다. 요즘 유튜브에 ‘용서의 힘’(The Power of Forgiveness)이란 동영상 하나가 화제입니다. 2003년 11월 미국에서 무려 48명을 연쇄 살인한 ‘그린 리버 킬러’ 사건의 재판정의 모습입니다. 가족을 잃은 피해자들이 범인인 ‘캐리 리지웨이’를 향해 온갖 증오와 저주의 말들을 다 쏟아 냅니다. 그런데 그 중 범인에게 사랑하는 딸을 잃어버린 ‘로버트 룰’씨가 증언대에 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당신을 용서한다. 당신에 대한 무한한 연민을 가지며 사랑한다!” 이 말에 마침내 희대의 살인범이 울음을 터뜨리며 유족들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고, 재판정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됩니다. 용서의 힘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 주는 감동적인 동영상입니다. 용서하는 일이 내 의지로도 내 감정으로도 쉽지 않다면, 어쩌면 우리는 위 동영상의 로버트 룰씨 처럼 내 감정 내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용서의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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