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중심에서 테러를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리퍼트 대사가 조찬 강연장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 도착한 것은 지난 5일 오전 7시33분쯤이었다. 행사는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주최였다.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눈 리퍼트 대사는 강단 바로 앞 헤드 테이블에 앉았다. 강단을 등진 대사 오른쪽은 통역, 왼쪽으로 국회의원들이 차례로 자리를 잡았다. 전체 참석자는 약 200명 정도였다. 강연 주제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그리고 한·미 관계 발전 방향’이었다. 리퍼트 대사와 한 테이블에 앉은 참석자들은 그가 한국 부임 후 낳은 아들 얘기가 화제가 되었다. 그 사이 빵과 수프가 서빙됐다. 오전 7시38분쯤 참석자들이 막 수프를 먹으려는 순간 리퍼트 대사가 “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얼굴에서 피를 흘렸다. 6번 테이블에 앉아 있던 김기종이라는 사람이 길이 25㎝ 흉기를 리퍼트 대사 등 뒤에서 얼굴에 휘두른 뒤 목을 감았다. 대사가 “둘째 아이도 한국에서 낳고 싶다”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김이 대사 오른편 통역 쪽까지 조용히 걸어와 그제야 흉기를 꺼내들었기 때문에 아무도 미리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김은 흉기를 빼앗기고 체포되었지만 한 목격자에 따르면 “김씨는 넘어진 상태에서도 리퍼트 대사의 종아리를 잡고 놓지 않았다”고 말해 김의 리퍼트 대사에 대한 집착을 가늠할 수 있었다. 곧 리퍼트 대사는 경찰 순찰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갔다. 칼을 맞은 그의 얼굴과 왼쪽 팔에서 흘러나온 피가 손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졌고, 분홍색 넥타이도 핏방울로 얼룩졌다.

   테러범 김의 과거 행적을 보면 그는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 같은 인물이었다. 김은 폭행, 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이미 여러 차례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중에는 5년 전 주한 일본 대사에게 시멘트 덩어리를 던지고, 지난해 서울 한 구의회 의장의 뺨을 때린 일이 포함돼 있다. 김이 2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을 겨냥해 “일본 대사보다 훨씬 더 많이 혼내주겠다”고 위협하는 글을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린 사실도 드러났다. 그는 광우병 촛불집회를 비롯한 폭력 시위의 단골 참가자이기도 했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 ‘한미 군사훈련 중단’ 같은 북한측 주장을 입에 달고 다녔다. 김정일 분향소를 덕수궁 앞에 만들려고까지 했다. 누가 봐도 자유민주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종북 인물이었고 그 수단으로 상습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당국의 어떤 감시와 제재도 받지 않고 활보하다 급기야 동맹국 대사를 칼로 찔렀다. 지금 북한은 김의 행동을 칭송하는 방송을 연일 내보내고 있고, 이적단체들은 김을 독립운동가인 안중근에까지 비유하고 나섰다. 차라리 그렇게 북한이 좋으면 가서 살게하는 방법을 찾아 주고 싶을 정도다. 그들은 진정한 민주주의는 종북을 포함한 모든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국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이런 종북세력은 발본색원(拔本塞源)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김의 테러 이후 한국은 더욱 수선스럽다. 우선 야당의 처신이 그렇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테러 다음 날 미 대사관을 찾아가 부대사를 만났다. 문 대표가 이러는 것은 이번 사건이 자신과 새정치연합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일 것이다. 그는 리퍼트 대사 피습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면서도 “종북 몰이에 이용해선 안 된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건만 터지면 제 발 저린 듯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는 야당의 처지다. 새정치연합이 재집권을 원한다면 이것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김은 바로 얼마 전까지 김경협·이종걸·우상호·문병호 등 야당 의원들의 도움으로 국회 시설을 빌려 세미나를 열거나 기자회견까지 했고, 국회 회견장에서 야당 의원들과 찍은 사진을 자신의 블로그 등에 띄워놓기도 했다. 김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과 통일부 통일교육위원을 지냈으며, 통일부의 지원을 받아 8차례나 방북했다. 이처럼 김기종이라는 ‘괴물’은 저절로 자라난 것이 아니다. 김의 활동을 방조하거나 비호해온 일부 야당 인사들의 책임도 결코 가볍다고 말할 수 없다. 새정치연합은 2010년, 2012년 선거에서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했다. 그렇게 해서 표를 조금 더 얻었을지는 모르지만 통진당 세력이 국회와 지방정부에 다수 진출하는데 디딤돌 역할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통진당 이석기 세력의 혁명조직 사건과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 이후에도 이렇다 할 대국민 사과 한번 한 적이 없다. 새정치연합이 아직도 이들을 비호한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당 차원에서 종북과의 단절을 분명히 선언하고 과거 들러리 역할을 한 데 대해서도 사과해야 한다.


    또, 경찰의 행동도 도마에 올랐다. 지금 종로경찰서 앞에는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왜 현행범으로 체포된 김을 수갑도 안 채우고 이불로 싸는 등 ‘극진히’ 모셨는지, 중대범죄 피의자인 김이 하는 말을 왜 고스란히 생중계되도록 놔뒀느냐 는 것이다. 테러범의 비정상적인 모습보다 테러범에 대응하는 대한민국 경찰의 한심한 모습이 전 세계로 전파를 탔다는 것이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만약 우리나라 대사가 다른 나라에서 근무하다 저런 테러를 당하고 난 뒤, 그 나라 경찰이 테러범 극진히 모시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리퍼트 대사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니 천만 다행이다. 이 사태로 인하여 한미동맹과 양국 국민의 신뢰에 금이 가서는 안된다. 북한에만 우리 민족이 살고 있는 게 아니다. 미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우리 교민들을 생각한다면 한국땅에서 대미를 향한 테러는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 통합진보당 해산에도 불구하고 각계각층에는 아직 종북 세력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적성이 확인된 단체가 61개이며, 거기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회원이 2만여명에 이른다. 그나마 경찰 촉각에 잡히는 종북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번 테러를 단순히 개인 일탈로 돌려선 안 되는 이유다. 종북 세력에 대해 솜방망이 판결을 해온 사법부, 종북 토양을 키워온 한국 정부도 이번 테러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테러방지법’은 몇 년째 국회 서랍 안에서 잠자고 있다. “대 테러 대책을 주관할 국정원을 믿을 수 없다”는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야당도 ‘안보 문제에 대해선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무조건적인 종북은 친북과 진정한 진보와는 구분되어야 한다. 이제 테러를 동반한 종북세력과는 단절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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