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둘째아이를 임신 중에 두번이나 엘리베이터에 갇혔다. 되도록 걸어다니면 안된다는 의사의 소견에 따라 할 수 없이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자주 이용해야 했다. 필자는 어두운 곳을 싫어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주하는 이불덮기 놀이나 꽁꽁 숨어 있어야 하는 숨바꼭질 놀이를 지금까지도 해 본 적이 없다. 밤에 잠을 잘 때에도 불을 모두 끄고 자 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엘리베이터에 갇혀버린 것이다. 엘리베이터가 흔들거리더니 덜컹하고 멈췄고 이내 불이 꺼져버렸다. 곧 숨이 멈출 것 같았고, 너무 긴장한 탓에 만삭이었던 배는 터질 것 같았다. 캄캄한 엘리베이터 안에서 비상벨을 찾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화기를 가지고 타지 않아 더욱 당황했고, 필사적으로 문을 두드렸다. 얼마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긴 했는데, 어떻게 열렸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필자는 물도 무서워한다. 6개월간의 개인 레슨을 받고도 이정도밖에 못한다는 것이 속상할 때가 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유형을 할 때 수면위로 올라가는 팔의 각도나 물에 잠기는 얼굴의 평형각도를 보면 아주 능숙해보인다.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경직된 채로 수영장 레인을 가로질러가고 있는 것이다. 매번 목표는 왔다갔다 해서 10번 왕복이다. 이 목표를 채우기 위해 옆도 보지 않고 앞만보고 수영을 한다. 수영 전부터 몰려오는 두려움과 수영 중에도 여전히 떨쳐내지 못하는 물에 대한 공포로 수영을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지금까지 필자는 어두운 곳과 물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남한테 들키기 싫었던 나의 약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주부터 신기하게도 불을 끄고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수영장을 갔는데도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나의 약점을 까발리고 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캄캄한 곳을 얼마만큼 지독하게 싫어한다는 것에 설명했고, 아이들에게도 물이 가슴위로 올라가는 곳에 가면 숨이 가프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던 그 날 이후부터 나는 나의 오래된 공포들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한국 어머니들의 공통된 병에는 울화병이라는게 있다. 일명 홧병이다. 할말 못하고 참고 참고 또 참아서 생긴 병이다. 하지만 이 병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나면 속이 시원해질 때가 있다. 사람은 자기의 약점이 될만한 일을 애써 숨기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을 속시원하게 고백하고 싶다는 욕구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비밀의 무게로 인한 마음의 짐을 덜고자 하는 역반응이라고 한다. 고민은 이처럼 밖으로 내놓음과 동시에 더이상 고민거리가 아니게 된다. 마치 베테루의 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일본의 홋카이도에 있는 ‘베테루의 집’에는 이라크 전쟁을 내가 일으켰다고 생각하는 시모노씨, UFO를 타고 우주를 돌아다니다가 왔다는 추바메씨, 온세계의 TV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괴로워하는 요시노씨 등 평범하지 않은 이들이 모여살고 있다. 평범하지 않다는 표현보다는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정신병자들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자신의 약점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 병명을 붙이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만성자아 왕따 증후군, 생글생글병, 인간 알레르기 증후군 등 얼핏 들으면 의학전문용어 같지만 사실은 이들이 만들어낸 자가 병명이다. 서로의 약함을 잘 알고 있기에 더 의지가 되고 힘이 된다고 한다. 각자 정신장애가 있지만 베테루의 사람들은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정하는 곳, 약점을 인연으로 삼아 웃는 얼굴로 함께 사는 참으로 불가사의한 곳이다.

    그룹 홈과 공동주거도 다수 있고, 약 80명의 멤버들이 이곳에서 살고 있다. 1995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환각&망상대회>도 베테루 명물 중 하나다. 1년 간의 독특한 체험에 상이 주어진다. 지난해의 그랑프리는 35년간 어머니와 2m이상 떨어져 살아본 적 없는 전대미문의 기록과 하루 35알의 처방약을 갖고 있는 히로시씨에게 돌아갔다. 그는 뭐든지 경찰과 상담해야 하는‘경찰의존’, 모든 남자는 여성에 의존한다는‘여성의존’등을 거듭하면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몸으로 익히고 멋지게 모친의존에서 탈출하여 수상했다. 기념품으로 어머니와의 거리를 측정하는 자와 ‘폭발돌이’의 유혹에서 자신을 구하는 ‘안심순이’ 인형이 증정되었다. 그 밖에도 망상의 내용을 모두 함께 연기하는 등 병의 괴로움을 보란 듯이 웃음으로 바꿔버리는 베테루의 힘은 끝이 없다. 안심하고 게으름 피울 수 있는 직장 만들기, 스스로 이름 붙이는 자기의 병, 편견과 차별 대환영, 뜨는 인생에서 지는 인생으로, 괴로움 되찾기, 공사혼동 대환영 등이 베테루의 생활신념이다. 자신의 약한 구석을 공개하고 철저하게 함께 이야기하는 것으로, 누구도 겉돌지 않는 장소를 만들어내 낸 베테루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가 정신이상자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잠시나마 베테루의 집을 경험해 보는 건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신체상의 숨겨진 결함이나 나쁜 버릇, 창피했던 실수, 자기 스스로에게 치욕적인 순간 등 다른 사람이 몰랐으면 하는 일 몇가지는 가지고 있다. 그런 부분을 숨기고 싶은 생각에 아예 그런게 없는 체하며 타인을 대한다. 단단히 무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쪽에서 그런 무장을 훌훌 벗어 버리고 약점을 먼저 말한다면, 상대방도 덩달아 마음이 가벼워져 무장을 풀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애써 약점을 숨기려 하거나, 혹은 반대로 들키지 않기 위해 과하게 잘난 척하는 일은 그만두자. 이제 우리 모두 숨겨둔 마음의 병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신의 약점에 좀더 솔직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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