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내일 부활주일 설교 준비를 마치고 모자를 눌러쓰고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교회 주차장을 가로질러 걷다가 발끝에 돋아난 작은 풀잎 앞에 걸음을 멈췄습니다. 새까만 아스팔트 포장 위에 파란 풀잎이 돋아나 있었습니다. 파란 풀잎에 돋아난 대롱 끝에 노란 꽃까지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민들레였습니다. 그 앞에 쪼그리고 한참을 앉아 있었지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속담이 생각나더군요. 새까만 아스팔트에서도 꽃은 핀다는 사실이 신기함을 넘어 기적같이 느껴졌습니다. 아스팔트 틈새를 찾아 뚫고 솟아나 꽃을 피워낸 것입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생명이 있기에 생명의 꽃을 피울 수 있음을 확인한 경이로운 순간이었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어느새 성큼 곁에 다가온 봄을 만났습니다. 콜로라도의 길고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나무들은 지난여름 내내 입고 있던 푸르디 푸른 자신들의 옷을 가을이 되어 아낌없이 벗어 버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죽은 듯, 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 죽은 듯 앙상한 가지 사이로 새 순이 돋아나고 있었습니다. 야생 능금나무 가지들에도 수줍은 꽃망울들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급해 일찍 활짝 꽃망울을 터트린 한 송이 능금 꽃 위로 꿀을 찾아 벌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가 이내 다른 꽃을 찾아 부지런히 날아갑니다.

     산책로 곁으로 흐르는 개천 물 위로는 원앙새 부부 두 마리가 한가로이 물 위를 미끄러져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뜻하지 않게 봄날 오후가 선물로 가져다 준 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내 눈에 들어 온 모든 것들이 이렇게 나를 향해 소리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나 다시 살아났어요!” 이렇게 소리 지르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봄날의 선물들을 헨드폰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인 지난 주일이 부활 주일이었지요? 부활절 설교를 하다가 설교 마무리 부분에서 어제 찍은 사진 몇 장을 화면에 뛰어 ‘나 다시 살아났어요!’라고 외치던 봄날 오후의 선물들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설교를 마무리 했지요. “봄이 되면 자연 만물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부활을 온 몸으로 외치고 노래합니다. 나 다시 살아났다고.... 그런데 부활을 믿는다고 하고 부활절 절기를 맞이하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직도 차가운 인생의 겨울 속에 쳐 박혀 있지 않습니까? 어두움과 절망과 낙심을 친구 삼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낱 미물에 불가한 자연 만물들도 매서웠던 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다시 살아난 자신들의 부활을 노래하는데 사망과 무덤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은 더 부활 생명으로 넘쳐나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설교했습니다. 봄날 오후에 만난 한 마리 벌, 능금 꽃 한 송이, 그리고 원앙새 부부, 앙상한 가지 매듭 사이를 비집고 돋아난 여린 새순 하나, 이들은 감사하게도 부활절 설교를 멋지게 마무리 할 수 있는 좋은 설교 재료가 되어 주었습니다. 참 많이 행복했던 부활 주일이었습니다.

    우리의 행복이 평범한 일상 속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부활 생명의 소중한 메시지를 민들레꽃 한 송이에 숨겨놓으셨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면서 헬렌켈러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태어난 지 19개월 되던 달에 열병을 앓아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가 되어 평생을 삼중고 속에서 살았던 헬렌켈러는 어느 날 보송보송한 병아리 한 마리를 손안에 담고 거기에서 느껴지는 촉감을 통해 ‘생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오금이 저리도록 기뻐하면서 “이것이야말로 황홀한 생명이야!”하며 감탄했다고 합니다. 헬렌켈러의 전기를 대신 썼던 작가는 그것을 ‘소황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커다란 기쁨을 얻기 위해 허겁지겁 수고하고 애쓰지만 그러나 그러한 기쁨은 자주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기쁨은 눈만 크게 뜨고 조용히 귀만 기울여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습니다. 유명한 관광지를 찾아가 화려하게 만개한 벚꽃의 장관을 보는 기쁨도 좋지만, 화단에 피어있는 작은 풀꽃을 눈 크게 뜨고 관찰해 보면 그 또한 생명의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좋은 메세지가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얻기 힘든 큰 기쁨만 추구하다가 얻지 못하고 실망하느니, 차라리 일상 속에서 얻기 쉬운 작은 기쁨을 자주 체험하는 것이 한결 행복한 삶인 것 같습니다. 어느 봄날 오후에 봄을 만난 기쁨과 행복을 그리고 부활 생명의 위대함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 주신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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