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기획 시리즈로 <이것만은 제발>이라는 타이틀로 기사가 두어달에 걸쳐 나간 적이 있었다. 식당, 부동산, 은행, 보험, 마트, 미용실 등의 업체에서 싫어하는 고객, 꼴보기 싫은 진상 손님들의 순위를 매겨서 보도한 기사인데, 당시 한인사회에서는 대단한 관심거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떤 고객들이 순위에 올랐을까, 아니면 본인들이 그 순위에 들어가 있지는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업체측에서는 포커스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입장은 약간 달랐다. 꼴보기 싫은 업체들에 대한 순위도 매겨 달라는 간곡한 요청이 여러 번 있었다. 여하튼 소비자들의 입장을 대변할 <무슨 똥 배짱이냐>라는 가제가 한창 입에 오르내렸다. 한마디로 소비자들을 무시하는 업체들의 횡포가 많다는 풍문이다. 물론 사실인 부분도 있다. 잔소리 하는 고객들에게 물잔을 던지듯이 내려놓는가 하면, 길게 늘어선 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캐쉬어들끼리 잡담을 한다거나, 급하게 볼 일이 있어 보험 에이전시에게 전화를 걸어도 도통 연락이 되지 않는다거나, 유통기한 훌쩍 넘긴 물건을 몰래 팔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기도 한다. 정직하지 못한 부동산 브로커로 인해 손해 본 이들도 찾아보면 아마 한 둘은 아닐게다. 그래서 이번주에는 가장 신빙성 있는 풍문들을 몇 개 모아봤다.
얼마전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갔다. 큰 녀석은 일주일 내내 고열과 기침에 시달렸고, 작은 녀석은 높은 열은 아니었지만 기침을 시작한 지 1달이 다 되어 가도록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필자 또한 3일내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집에서 누워 있어야만 했다. 우리 셋은 하루하루 감기의 끝자락에 있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다 아는 얘기겠지만, 아픈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을 가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명은 업고, 한 명은 거의 질질 끌다시피 하며 데리고 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일하는 엄마는 더욱 힘들다. 일하는 중에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병원 예약을 하고, 그 시간에 맞춰 아이들을 부랴부랴 픽업 해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도 힘든데, 병원에서는 예약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를 한 시간 이상 기다리게 했다. 집에 가만히 누워 있어도 힘든 셋을 말이다. 더 어이없는 것은 우리 외에는 예약 손님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져 묻자 응급상황이 있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응급상황이란 의사가 잘 아는 환자가 와서 먼저 봐 주고 있다는 의미였다. 결국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병원을 나왔다. 병 고치러 갔다가 더 병들어서 나온 셈이 되었다. 풍문으로 듣기로는 많은 환자들이 이 병원에서 1시간 정도 기다린 경험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도 병원에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몇 년 전에 한 스킨케어 샵에서 한인 여성이 케미컬 필링을 하고 난 뒤 얼굴이 뒤집어진 사건은 가히 충격적이라 할 수 있다. 피부 관리를 받고 난 다음 날 그 여성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진물이 생기고 머리 속까지 상처가 났으며 실명의 위기까지 찾아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케미컬 필링은 시작하기 전 부작용 테스트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사전 테스트에 관한 상식은 웬만한 피부 관리사들은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이 관리사만이 몰랐던 것 같다. 고객이었던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케미컬 필링을 받았다가 1년 동안 병원에서 재생 치료까지 받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맞았다. 그녀는 치료를 받는 동안 극심한 우울증으로 힘들었고, 경제적 손실도 입었지만 문제는 지금까지도 그 흉터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으며, 같은 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고소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풍문으로 듣기로는 그 피부관리사는 당시 자신의 집에서 아는 사람 위주로 일을 해왔고, 관리 경험도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부관리에 대한 기본 상식도 부족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영업 중인 듯하다.
이민자들은 살면서 한번쯤은 이민 변호사를 찾아간다. 사실 미국에서는 어떤 변호사를 만나는가에 따라 삶의 향방이 달라질 정도로 변호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절대 안하는 직업도 변호사인 탓에, 우리는 자주 속는다. 어떤 변호사는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민국이나 혹은 법원에서 거절 당한 케이스를 가지고 마치 의뢰인 자체의 상황이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몰아가기도 한다. 필자가 아는 지인 두 명은 비슷한 시기에 각각 비자 연장 신청을 했다. 그런데 오히려 규모가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지인의 비자 연장은 쉽게 승인되었는데, 세금보고를 더 많이 한 큰 규모의 업체를 경영하는 지인은 1차로 거절당했고, 보충 서류를 요청받았다. 이는 변호사의 역량 때문이라는 풍문이다. 알고보니 규모가 작은 가게에서 고용한 변호사는 이민국에서 꼭 필요한 서류만 챙겨서 넣었고, 거절당한 지인의 변호사는 쓸데없는 서류들까지 가득 챙겨서 제출해 여느 신청자들이 제출한 세배 가량의 분량을 접수시킨 것이다. 직접 서류를 보니 필자라도 살펴보기 싫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더욱이 비자 연장 신청을 거절당하고 난 뒤, 변호사가 보충서류를 접수시켜야 하는 시간까지 놓쳐버려 이 가족은 미국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더 황당한 것은 이 가족은 다른 변호사를 고용해 체류신분을 연장했다고 한다. 물론 자신있게 의뢰를 받았다가 가족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칠 뻔한 그 변호사도 아직 영업 중이다.
요즘 한국에서는‘풍문으로 들었소’ 라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이곳 콜로라도 한인사회와 비슷한 분위기를 접할 수 있다. 밝고 쾌활한 웃음보다는 씁쓸한 웃음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블랙 코미디 같은 분위기 말이다. 우아한 척, 고수인 척 수선을 떨었던 그 피부관리사, 능력있는 양 어깨에 힘들어 간 변호사. 겉으로는 상냥한 척, 자신들이 최고인 척 하지만 알고보면 다른 사람의 인생에는 관심없고 오직 ‘나’만 존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 ‘나 건드리지 말라’고 엄포를 놓기도 한다. 다른 사람보다 영어를 잘하고, 법을 잘 안다는 하찮은 우월감에서 오는 태도다. 고객을 실험대상인 마루타처럼, 그리고 돈벌이 대상으로만 여기는 이들의 작태가 지금도 풍문으로 들려오고 있다.
김현주 편집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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